[김희태의 WC 돋보기]박지성이 흐름 뒤집어 16강행 가능했다
OSEN 조남제 기자
발행 2010.06.23 08: 52

[6월 23일 한국-나이지리아(B조), 더반]
 
16강 진출이다. 드디어 대한의 건아들이 일을 내고야 말았다. 새로운 역사가 새겨진 것이다. 2002 월드컵 4강은 개최국으로서 얻어낸 성과였음을 감안한다면 이번 16강 진출은 어떠한 미사여구로 의미를 부여한다 해도 부족한 어마어마한 쾌거다.

이번 한국의 16강 진출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선수는 야쿠부, 아니 박지성이다(아무리 축구 감독이라고 해도 이런 날은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 경기 초반 먼저 실점한 후 한국 선수들의 움직임은 굳어졌다. 투박한 패스와 허술한 압박으로 인해 나이지리아의 페이스로 끌려갔다.
이러한 흐름을 바꾼 존재가 박지성이었다. 특히 대개의 선수라면 포기했을 공을 끝까지 추격해 프리킥을 얻어내며 나이지리아 골키퍼에게 옐로카드를 안긴 플레이는 한국 선수들로 하여금 추격 의지를 불타오르게 했다.
축구는 흐름의 스포츠다. 사실 경기에 뛰는 선수는 흐름에 휩쓸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축구에서 감독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경기에서 박지성이 보여준 활약은 정말 대단했다고 할 수 있다. 경기장에서 뛰는 단 한 명의 선수가 경기의 흐름을 바꾼다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전 세트피스 골을 그대로 재현한 기성용과 이정수를 비롯한 한국 축구팀에도 찬사를 보낸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에 걸쳐 이러한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피나는 훈련과 집중력의 결과다. 선수들이 이 한 순간을 위해 흘렸을 땀과 노력이 눈에 선하다.
박주영의 골 역시 인상깊었다. 박주영은 한국 축구에서 보기 드문 스타일의 공격수다. 흔히 축구팬들은 한국 축구 스트라이커의 계보가 이회택 차범근 최순호 황선홍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현재 이들의 계보를 이을 스트라이커는 이동국일 것이다.
하지만 박주영은 안정환의 계보를 잇는다고 할 수 있다. 안정환과 박주영은 한국에서 보기 드물게 공간을 활용하는 축구를 할 줄 아는 공격수다. 박주영은 프랑스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최근 대표팀에서는 골을 기록하지 못해 심적 부담이 컸을 텐데 이번 득점을 계기로 한국의 8강, 4강 진출을 이끌어주기를 기대한다.
한국의 토너먼트 대진표를 생각해보면 8강, 4강도 꿈이 아니다. 이를 위해 기쁨을 잠시 접어두고 보완해야 할 점을 몇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경기 초반 한국 측면 수비의 집중력 부족이 아쉬웠다. 나이지리아가 측면 공격을 주로 하는 팀인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지리아에 측면 공간을 많이 허용했고 또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측면에서 첫 번째 실점까지 당한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경기가 진행되면서 이영표와 차두리가 모두 안정감을 찾고 승리에 공헌하기는 했지만 상대가 측면 공격에 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측면 봉쇄에 실패했다는 것은 반성할 점이라 생각한다.
또한 김남일의 교체 타이밍도 아쉬움이 남는다. 나이지리아가 미드필드진이 좋은 팀이 아니었고 후반 경기 흐름은 한국이 리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나이지리아의 템포로 진행됐다.
물론 허정무 감독으로서는 16강 진출이 가장 중요했기에 김남일을 투입해 한 골 리드를 지키고 싶었겠지만 차라리 김남일 대신 이승렬이나 안정환을 투입해 빠른 공격으로 추가골을 노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이지리아의 팀 기량이 한국보다 뛰어나지 않아 이런 팀에는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전술이 효과적일 수 있었다. 현재 한국 선수들의 기량은 역대 최고라 할 수 있다. 다행히 대진운이 좋아 16강, 8강에서 만날 팀들은 한국을 압도할 만한 스쿼드를 갖추지는 못했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스페인 같은 팀을 상대하지 않는 이상 현재 한국 선수들 실력이라면 굳이 수비적인 전술로 저자세를 취할 필요는 없다. 보다 당당한 모습으로 2002 월드컵의 성과를 재현하기를 기대한다.
축구인으로서 또 한국인으로서 가장 감격스럽고 자랑스러운 날 중 하루로 기억될 것 같다. 다시 한 번 온 국민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해준 선수들과 허정무 감독에게 감사를 표한다.
<정리> 김가람 인턴기자
<사진> 더반(남아공)=손용호 기자 spjj@osen.co.kr
■필자 소개
김희태(57) 해설위원은 국가대표팀 코치와 대우 로얄스, 아주대, 명지대 감독을 거친 70년대 대표팀 풀백 출신으로 OSEN에서 월드컵 해설을 맡고 있습니다. 김 위원은 아주대 감독 시절 서울기공의 안정환을 스카우트했고 명지대 사령탑으로 있을 때는 타 대학에서 관심을 갖지 않던 박지성을 발굴해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로 키워낸 주역입니다. 일간스포츠에서 15년간 해설위원을 역임했고 1990년 이탈리아 대회부터 2006년 대회까지 모두 5차례의 월드컵을 현장에서 지켜봤고 현재는 고향인 포천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축구센터를 직접 운영하며 초중고 선수들을 육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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