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6일 한국-우루과이(16강전), 포트 엘리자베스]
비록 8강 진출은 실패했지만 한국 선수들은 모든 것을 운동장에 쏟아부었다. 원정 최초 16강 진출을 이뤄내고 우루과이를 상대로 부끄럽지 않은 일전을 보여준 선수와 허정무 감독은 당당하게 돌아오길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심판의 판정에 많은 의문이 남는 경기였다. 전반전 막판에 PK나 다름없는 기성용의 핸들링 파울이 나왔지만 잡지 못했고, 반대로 후반전에는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우루과이 수비수가 기성용의 발을 밟는 명백한 파울을 저질렀음에도 PK를 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파울은 놔두고 정당한 몸싸움에 휘슬을 부는 명확하지 않은 판단 기준에 대해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고 하더라도 밖에서 경기를 지켜본 팬들마저 오심에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텐데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이 현실을 받아들이며 끝까지 선전을 펼친 것은 매우 대견스러웠다.

이번 월드컵의 가장 큰 소득은 박주영과 이청용의 경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지성이 2002월드컵 포르투갈 전에서 그림같은 골을 기록한 후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했듯 그들도 이번 월드컵에서 득점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큰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월드컵에 출전한 23명의 선수 구성은 2002 월드컵의 경험과 신예 선수들의 조화가 절묘하게 이뤄졌다. 이운재 안정환 김남일 등은 비록 주역으로 활약하지는 못했지만 장차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 후배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해줬을 것이다.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조용형 오범석 김정우 정성룡 등은 2014 월드컵에서도 주축 멤버로 활약할 것이다.
이번 월드컵의 16강 진출은 장차 한국 축구가 원정 월드컵에서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플레이를 맘껏 펼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선수들은 사소한 징크스에도 심리적인 안정을 찾곤 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원정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한다는 징크스를 깼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선수들은 한국 축구계에서 결코 지어지지 않을 족적을 남긴 것이다.

이날 경기에서는 선수들이 정말 많은 활동량을 보여줬다. 선수들로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허정무 감독은 효율적으로 공격 찬스를 잡기 위해 롱패스를 활용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주로 3선에서 롱킥을 이용해 1선에 직접 연결을 시도했고 박주영 박지성 이청용이 경합을 통해 공격을 진행했다. 김정우 김재성 기성용 등이 경합 중간에 흘러나오는 공을 잡기 위해 지원했고 차두리와 이영표 역시 활발한 오버래핑으로 공격 시 수적 우위를 점했다.
이날 경기에서 이영표와 차두리의 오버래핑이 유독 활발했던 이유는 롱킥을 받기 위해 공격수들이 1선에 위치를 선점하면서 2선에 상대적으로 많은 공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우루과이는 한국의 롱킥을 의식해서 평소보다 수비라인을 내릴 수 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1선과 3선의 간격 유지를 중시하는 우루과이로서는 본래 자신의 플레이를 할 수 없었다.
이청용이 동점골을 터트린 이후 우루과이는 3선의 라인을 평소와 같이 올리면서 위협적인 공격을 보여줬다. 하지만 한국 역시 수비 뒷공간을 활용하는 공격을 통해 기에서 눌리지 않았다.
한국은 평소 짧은 패스를 선호하는 공격 스타일이었기에 이날 경기에서 보여준 롱킥을 통한 공격은 우루과이로서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조별리그에서 보여준 우루과이의 수비력은 상당히 견고했다. 이러한 우루과이의 수비진을 상대로 많은 골찬스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우루과이 전에 맞춰 준비한 전술이 효과적이었음을 의미한다.
패배는 곧 탈락인 토너먼트에서 리드를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박지성과 이영표는 평소보다 더 많은 활동량을 보여줬다. 이영표와 차두리가 모두 공격적으로 전진하면서 수비라인의 밸런스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지만 그러한 위험 부담을 감수한 채 모든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공격에 참여했기 때문에 동점골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축구는 발로 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세계적인 초일류 선수들도 실수를 할 수 밖에 없다. 경기에서 선수들이 실수를 범한 것에 대해 비난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한국의 선수들이 이번 월드컵에서 보여준 활약상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오히려 약간의 빈 틈을 놓치지 않고 득점에 성공한 우루과이를 칭찬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선수들이 너무나 많은 활동량을 보여 연장전에 갈 경우 체력 부족이 걱정됐을 정도로 태극전사들은 경기장에서 모든 것을 쏟아 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고 당초 목표인 16강 진출을 달성했기 때문에 이번 패배에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돌아오길 바란다.
OSEN 해설위원(FC KHT 김희태축구센터 이사장, 전 대우 로얄스 및 아주대 명지대 감독)
<정리> 김가람 인턴기자
<사진> 포트 엘리자베스(남아공)=손용호 기자 spjj@osen.co.kr
■필자 소개
김희태(57) 해설위원은 국가대표팀 코치와 대우 로얄스, 아주대, 명지대 감독을 거친 70년대 대표팀 풀백 출신으로 OSEN에서 월드컵 해설을 맡고 있습니다. 김 위원은 아주대 감독 시절 서울기공의 안정환을 스카우트했고 명지대 사령탑으로 있을 때는 타 대학에서 관심을 갖지 않던 박지성을 발굴해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로 키워낸 주역입니다. 일간스포츠에서 15년간 해설위원을 역임했고 1990년 이탈리아 대회부터 2006년 대회까지 모두 5차례의 월드컵을 현장에서 지켜봤고 현재는 고향인 포천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축구센터를 직접 운영하며 초중고 선수들을 육성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