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안 뛰냐구요? 사인이 안 나와서 자제하고 있어요".(웃음)
얼마 전 김현수(22. 두산 베어스)에게 '왜 최근 2년 간 도루 시도가 적은 것인가'라고 질문하자 그는 귓속말로 이렇게 답했다. 2008년 13개의 도루를 기록했던 김현수는 지난해 6개의 도루로 그 직전 해에 비해 시도 자체를 대폭 줄였다.

"뛰어도 성공 가능성이 반반이니까요"라며 웃은 김현수. 신일고 시절 느린 발로 인해 지명받지 못했다는 선입견도 있지만 그의 100m 기록은 12초 대로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그리 느리지는 않은 편이다. 체격이 상대적으로 큰 편이라 스타트 동작이 다소 늦을 뿐 2베이스 이상의 주루 시 가속이 붙는 주자라 생각보다 빠르다.
2번 타자로도 자주 출장했던 2008시즌의 김현수와 달리 최근 2년 간 그는 중심타선에서 활약하느라 도루 자체를 자제해왔다. 그러나 27일 잠실 KIA전만은 달랐다. 김현수는 5-2로 앞선 5회 좌중간 안타로 출루한 뒤 안영명-김상훈 배터리를 상대로 도루를 감행, 2루 악송구까지 편승해 3루까지 진루했다. 5-3으로 상대가 한 점을 추격한 7회에는 '육상부' 오재원과 이중 도루에 성공했다. 그간의 김현수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는 지난 2008년 4월 3일 광주 KIA전에서 1경기 2도루를 성공한 이후 처음. 당시 김현수는 2번 타자로 번트보다 출루-안타로 작전 수행에 나서던 타자였다. 김경문 감독이 갓 지휘봉을 잡았을 당시 장원진 현 원정기록원의 역할을 이어갔던 김현수는 컨택 능력의 발전과 장타력 증대를 통해 그 해 중반부터 3번 타자로 출장하기 시작했고 올 시즌 초반에는 4번 타자로도 나섰다.
그러나 선수 본인이 보직에 부담을 갖고 있던 차에 이성열이 6번 타순으로 이동하고 김현수가 익숙하던 3번에 배치는 수순을 밟기도. 올 시즌 타율 2할9푼7리(28일 현재)를 기록 중인 김현수의 3번 타순 성적은 29경기 3할2푼7리(107타수 35안타). 순번 하나 씩 아래로 내린 타순이 다시 원상복구된 것과도 같다.
김현수의 3번 타자 복귀와 과감한 도루 시도는 김 감독의 시즌 초 전략이 수정되어 다양화를 꾀하고 있다는 증거. 올 시즌 전 김 감독은 이성열, 유재웅의 중용 가능성을 높이면서 "타선의 파괴력으로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타선을 구축하고 싶다"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김 감독은 유재웅-이성열의 가용 예상 타순에 대해 김 감독은 "2번과 3번, 아니면 7번 타순"이라고 이야기했다. 번트를 정형화하지 않은 3인 테이블세터 전략을 그대로 가져가고자 한 것이 전략의 기조였으나 상대 에이스를 상대하는 등 다득점이 어려운 경우에는 작전 구사를 통해 경기 양상을 흔들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현재 유재웅이 왼손 대타 요원으로 시즌을 소화 중인 상황에서 기회를 잡은 타자는 이성열. 팀 내 200m 달리기 시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발은 빠른 편이지만 단거리 도루 능력이 떨어지는 이성열의 올 시즌 성적은 2할7푼5리 12홈런 51타점 2도루. 장타력은 보여주고 있으나 도루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이성열이 자리를 꿰차 다른 선수들에게 전략 다양화를 기대해야 했던 순간 김 감독은 김현수에게 뛰라는 사인을 냈다.
따라서 27일 경기서 3번 타자 김현수가 감행한 2도루는 3점 차 이내 추격 가시권에서 더욱 도망가기 위한 감독의 전략이었다고 볼 수 있다. 선수 본인 또한 경기 후 "벤치에서 사인이 나왔다"라며 예상했던 답변을 내놓았다.
시즌 반환점을 돌아서 올스타전 휴식기를 향해 달려가는 두산의 2010년. 전반기 동안 발야구보다 파괴력 야구를 선보였던 두산은 김현수의 2도루를 통해 획일화된 전략으로 후반기를 보내지 않겠다는 일말의 복선을 깔아두었다. 앞으로의 두산이 공격 측면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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