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0일 스페인-포르투갈(16강전), 케이프타운]
16강전은 국제축구연맹 랭킹 2위와 3위가 만나기에는 너무 이른 시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포르투갈은 16강에서 물러날 팀이 아니었는데 대진운이 없었던 것 같다.

월드컵에서 강팀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진다. 스페인 역시 조별 리그보다 안정된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아직 팀 전체의 밸런스가 완벽해 보이지는 않는다. 우승하기 위해서는 수비라인과 미드필드진의 호흡을 조금 더 보완해야 할 것이다.
두 팀은 모두 공격 축구를 하는 팀이지만 그 색깔이 확연히 다르다. 포르투갈은 속공이고 스페인은 지공이다. 축구의 수준은 스페인이 높다고 할 수 있지만 한국이 도움을 받을 만한 전술을 운용하는 팀은 포르투갈이다.
스페인과 같은 패싱게임으로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단순히 볼 컨트롤이 좋은 패스력을 갖춘 선수들만으로는 부족하다. 물론 일단은 상대방에게 볼을 빼앗기지 않도록 상대 수비가 접근하기 전 빠르게 패스할 수 있는 기본기와 시야는 갖춰야 한다. 그렇지만 단순히 패스만 돌려서는 골을 넣을 수 없다.
우선 스페인의 사비와 이니에스타와 같이 순간적으로 템포를 바꿔 종패스를 할 수 있는 미드필더가 필요하다. 그리고 비야와 같이 수비의 뒷공간을 파고들 수 있는 움직임이 좋은 공격수가 있어야 하고 토레스나 요렌테와 같이 순간 움직임으로 골을 노릴 수 있는 타겟형 스트라이커도 있어야 패싱게임의 효과가 극대화된다.
물론 상대방이 뒷 공간으로 물러나면 패스를 돌리면서 공간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상대방의 압박이 없을 때는 중거리 슈팅으로써 상대 수비진이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는 상황 판단력도 있어야 한다. 게다가 공격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라모스와 같이 오버래핑을 해주는 제3의 옵션도 보유해야 한다.
즉 스페인과 같은 축구는 지금 황금 세대라 불리는 멤버가 있기에 가능한 전술이다. 선수층이 두터운 웬만한 유럽의 나라라고 해도 스페인과 같은 전술을 구사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반면 포르투갈은 속공이 무서운 나라다. 수비를 할 때는 1선과 3선의 간격이 좁지만 공격 할 때는 그 간격이 벌어진다. 1선이 미드필더의 지원을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공격을 진행한다.
일반적으로 공격 숫자가 수비 숫자보다 많은 경우는 흔히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포르투갈은 공격을 할 때 4명 이상의 공격수가 빠르게 전진하면서 상대 수비진을 교란시킨다. 보통 속공 때 1~2명의 선수가 침투하지만 4명의 선수가 속공에 참여한다면 상대 입장에서는 수비진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포르투갈의 전술은 팀의 승리를 위해서는 매우 효과적이지만 아쉽게도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라는 세계 최고의 선수를 최대한 활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호나우두는 순간적으로 템포를 바꾸는 능력이 탁월한 선수이다. 드리블 능력과 가속 능력, 슈팅 능력을 갖추고 있다.
즉 호나우두는 지공과 속공에 모두 능한 선수다. 2가지 무기를 지녔다는 것은 단순히 2가지 옵션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수비 입장에서는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가지 무기가 동시에 효과적으로 사용된다면 그 시너지 효과가 커지게 되고, 이는 한 선수로 인해 팀 전체의 공격 옵션이 다양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포르투갈은 속공에 중점을 뒀기에 호나우두의 능력을 모두 끌어내지 못했다. 일단 패싱게임으로 경기를 지배할 만한 미드필더진이 구축되지 못했고, 중앙에서 상대 수비진을 끌고 다닐 만한 원톱도 없었다. 만약 호나우두가 스페인에 있었다면 스페인은 브라질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팀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날 경기에서 스페인은 토레스를 원톱으로 세우고, 비야가 섀도 스트라이커로 종횡무진 활약했다. 비야는 1선으로 파고드는 움직임이 좋을 뿐만 아니라 2선에서 볼을 잡아도 위협적인 슈팅으로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등 활동 반경이 넓다.
또한 스페인의 패스는 템포가 빠르고 운동장을 넓게 사용하기 때문에 상대 수비 입장에서는 균형을 유지하기 힘든데 그로 인해 약간의 틈이 생길 때마다 어김없이 찔러주는 사비와 이니에스타의 스루패스는 스페인 공격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포르투갈의 4백 수비는 효과적이지만 미드필드진의 압박이 효과적이지 못했다. 포르투갈은 수비 시 공격수들까지 수비에 참여 수적으로는 부족하지 않지만, 4백을 제외한 다른 선수는 공간을 막기보다는 사람을 막는 데 치중하기 때문에 스페인으로서는 어렵지 않게 패싱게임을 끌어갈 수 있었다. 패스는 사람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스페인을 상대할 때는 공간을 차단하지 않으면 페이스에 끌려갈 수 밖에 없다.
포르투갈과 스페인 모두 팀 컬러를 유감없이 보여준 경기였다. 포르투갈은 우승후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8강, 4강까지는 올라갈 자격이 있는 팀이었는데 조별리그를 포함해 대진운이 가혹했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 스페인의 경기력이 살아난 만큼 브라질 아르헨티나 독일과 우승 다툼이 기대된다. 심판의 오심을 비롯해 월드컵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여러 경기 외적 요인들이 눈에 보이긴 하지만,역시 토너먼트가 진행되면서 경기 자체의 질은 향상되고 있다.
OSEN 해설위원(FC KHT 김희태축구센터 이사장, 전 대우 로얄스 및 아주대 명지대 감독)
<정리> 김가람 인턴기자
■필자 소개
김희태(57) 해설위원은 국가대표팀 코치와 대우 로얄스, 아주대, 명지대 감독을 거친 70년대 대표팀 풀백 출신으로 OSEN에서 월드컵 해설을 맡고 있습니다. 김 위원은 아주대 감독 시절 서울기공의 안정환을 스카우트했고 명지대 사령탑으로 있을 때는 타 대학에서 관심을 갖지 않던 박지성을 발굴해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로 키워낸 주역입니다. 일간스포츠에서 15년간 해설위원을 역임했고 1990년 이탈리아 대회부터 2006년 대회까지 모두 5차례의 월드컵을 현장에서 지켜봤고 현재는 고향인 포천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축구센터를 직접 운영하며 초중고 선수들을 육성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