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박용하 운구, 일본팬들 인산인해
OSEN 윤가이 기자
발행 2010.07.02 09: 30

대체 여기가 대한민국인지 일본인지 순간 헷갈릴 정도로 수많은 일본 팬들이 운집했다. 2일, 故박용하의 발인 현장은 생전 그가 '한류스타'였음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일본 팬 일색이었다. 대부분이 일본인 중년 여성이었고 젊은 여성들이 간간히 눈에 띄었다. 그러나 한국 팬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한민국이 낳은 '한류스타' 박용하는 마지막 가는 길에 일본 팬들의 배웅을 받게 됐다. 
2일 오전 서울 반포동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는 유족과 측근들만이 참석한 가운데 고인의 발인식이 엄수됐다. 그리고 오전 6시가 조금 넘은 시각, '절친' 소지섭이 영정을 들고 먼저 계단을 내려왔고 뒤를 이어 유족들과 동료 연예인들이 서로서로 몸을 부축한 채 힘든 발걸음으로 따라 나왔다.
미리 현관 앞에 대기 중이던 취재진의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지는 가운데 유족들보다도 더 큰소리로 통곡하며 고인의 이름을 연호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2백여 명의 일본 팬들이었다. 동료들과 유족들이 현관을 빠져나가자 그 전까지 질서정연하게 구석에 자리하고 있던 일본 팬들은 순식간에 밖으로 뛰쳐나갔다. 고인의 미소가 가득한 영정을 가슴에 꼭 끌어안은 소지섭이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고 이루 김원준 김형준 등이 고인의 시신이 담긴 관을 운구차에 싣는 동안, 반포동 하늘 위로는 유족과 일본 팬들의 통곡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일본 팬들은 고 박용하의 비보가 전해진 지 하루만인 지난 1일, 삼삼오오 빈소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바다 건너 대한민국, 낯선 곳까지 비행기를 타고 택시를 대절해 찾아왔다. 이들의 정성에 감동한 유족은 그들을 빈소로 맞아들여 조문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조문을 마치고도 빈소와 장례식장 주위를 서성이며 발걸음을 떼지 못하던 다수의 일본 팬들은 늦은 밤까지 자리를 지키다 흩어졌다. 그리고 발인이 있던 오늘(2일) 새벽 5시, 빈소에는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본 팬들이 다시 모여들고 있었다.
운구차가 출발하자 이들은 모두 또 어디론가 흩어졌고 취재진이 뒤따라 경기도 성남 영생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상당수의 일본 팬들이 벌써 현장에 도착해있었다.
고인은 사실상 국내에서 보다도 '한류스타'로서 일본 등 아시아권 국가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2002년 드라마 '겨울연가' 이후 '러빙유', '작전', '남자 이야기' 등 출연작들 대부분이 큰 흥행을 거두지 못한데다 일본 활동에 주력한 탓이었다. 때문에 고인의 죽음은 국내 팬들보다도 일본 팬들에게 뼈아픈 충격을 낳고 말았다.
아직 운구차가 도착하지 않은 화장터에는 NHK 등 일본 언론사를 비롯, 수십 명의 일본 팬들, 그리고 국내 취재진이 모여 고인을 기다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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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지형준 기자jpnews@osen.co.kr/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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