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하고 싶으면 스릴러 영화를 찍어라. 충무로가 최근 수 년동안 스릴러 불패론에 빠져 있다. 지난 2008년 2월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한국영화에 스릴러 붐을 일으킨 다음부터다.
올 여름에도 극장가에 스릴러 열기는 뜨겁다. 유괴 영화의 새로운 유형을 제시한 본격 스릴러 '파괴된 사나이'가 1일 막을 올린 뒤 전쟁 대작 '포화속으로'와 깜짝 흥행의 주인공인 고전 에로물 '방자전'을 제치고 한국영화 흥행 1위를 달리는 중이다. 스릴러 후속으로는 14일 강우석 감독의 '이끼'가 개봉 대기중이다.
'파괴된 사나이'는 여러 면에서 한국 극장가에 스릴러 붐을 일으킨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와 닮은 꼴이다. 탄탄한 시나리오가 일찍부터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 입소문을 탄 것에서부터 신인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 데뷔를 했다는 사실도 똑같다.

여기에 하정우-김윤석의 연기파 명콤비를 부각시켰던 '추격자'와 마찬가지로 '파괴된 사나이' 역시 김명민-엄기준이라는 깜짝 카드를 내놓았다. '연기본좌'로 불리는 김명민은 멜로 '내사랑 내곁에' 흥행에 이어 이번에는 복수심에 불타는 부성을 앞세워 스릴러에 도전한다.
또 밝고 명랑한 이미지의 엄기준은 '추격자' 속 사이코패스 하정우에 버금갈 정도로 야비하고 냉혹한 연쇄 살인마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특히 어린이들을 제물로 삼았다는 점에서 최근 사회 범죄와 맞물려 더 섬뜩한 공포감을 유발하고 있다.
'파괴된 사나이'는 기존의 유괴영화와 달리 잃어버린 딸이 살아있음을 알게 된 목사 출신 아버지(김명민 분)가 신앙과 가정, 모든 것을 앗아간 그 놈(엄기준)과의 피 튀기는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다. 간단 명료한 줄거리지만 스릴러 수작답게 기기묘묘한 반전과 악 소리나는 공포, 그리고 감동의 눈물까지 영화 한 편에 담아냈다.
정재영 박해일 주연의 ‘이끼’는 지난 해 모두 3600만 클릭수를 기록한 윤태호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스릴러다.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한적한 시골 마을을 찾은 유해국(박해일 분)이 그를 이유 없이 경계하는 이장 천용덕(정재영 분)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과 쫓고 쫓기는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다.
2시가40분 긴 러닝타임 때문인지, 중반이후 긴장감이 떨어지는게 흠이지만 전체적으로 영화 완성도는 높다. 특히 젊은 시절과 노년의 모습을 전 후반으로 나눠서 보여주는 정재영의 열연이 돋보인다.
또 천만영화 '괴물'과 '극락도 살인사건' '10억' 등에서 스릴러 연기에 맛을 들였던 박해일도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진실을 찾아 헤매는 주인공의 심리 묘사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여기에 최근 사회 물의를 일으킨 스폰서 검사를 연상시키는 블랙 코미디가 영화 속에 포개지고 유준상, 김상호, 유해진 등 조연들의 호연까지 겹쳐 스릴러의 재미를 높였다는 평가다.
월드컵의 그늘에 가려 힘든 6월을 보냈던 극장가가 성수기인 7월 한여름을 맞이해 서늘한 공포감과 뜨거운 흥행 열기의 냉온탕을 오갈수 있을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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