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다도 복원 나선 어머니 덕분에 차에 푹~
흉내내기 급급한 찻집 많아 대중화 찾긴 일러
생활다례‧강의 등으로 차 문화 보급에 전력

[이브닝신문/OSEN=김미경 기자] 어머니를 꼭 닮았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무형문화재 궁중다례의식 보유자인 김의정 명원문화재단 이사장, 그의 차(茶) 사랑 얘기다. 그는 어머니 김미희 여사에 이어 2대째 우리 고유의 차 문화를 전승 중이다. 그를 얘기할 때 차를 빼놓을 수 없다. 차를 논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의 하루는 차로부터 시작되고 끝나는 셈이다. 커피만큼 다도를 즐기는 사람도 많아졌다. 건강을 챙기는 사람들이 늘면서부터다. 커피전문점에서도 우리 차를 팔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대중화를 찾기엔 이르다고 김 이사장은 운을 뗀다. 옷매무새를 정갈하게 다듬고 자세를 곧추 세운 그는 마치 귀한 손님을 맞듯 차를 맞는다.
-차에 빠진 사연이 궁금하다.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지금의 명원문화재단을 있게 한 건 바로 어머니의 수고 덕분이었다. 명원이라는 이름 역시 어머니의 호에서 따왔다. 과거 일제시대 일본은 앞선 우리의 차 문화를 왜곡시켰고 어머니는 사라진 한국 다도를 복원하기 위해 1950년때부터 전국방방곡곡의 차 관련 자료와 다인들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다인으로 이름을 알린 스님들조차 일본식 다례법을 따르는 상황에서 한국 다례법을 찾기란 그리 만만치 않았다. 그러다가 극적으로 궁중 다례법을 알고 있는 상궁 두 명을 찾았고 어머니는 그들에게서 전통 다례법을 전수받았다. 차에 관한 역사 문헌을 추적하는 일부터 시작해 우리차에 관련된 지식이 전혀 없었던 그때 어머니는 일본식 차 문화를 일체 배제하고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우리 고유의 차 문화를 전승한 첫 인물인 셈이다. 어머니는 사재를 털어 다기 제작에서 차 연구, 각종 세미나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 다도 복원에 관한 모든 것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처음부터 어머니의 뒤를 따르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다. 어머니 옆에서 자연스레 차를 접하고 배웠고 서서히 차의 참 맛을 알아갔다. 비로소 차를 온전히 받아들였다.
-재단과 학교에서 강의 중인데.
▲한국 고유의 예절과 한국 전통 차 문화 예식을 겸비한 생활다례를 가르친다. 차를 진정으로 즐기는 방법이다. 다례는 정치, 경제, 사회, 음악, 의상, 정신, 건축, 미술, 요리 등이 결합된 종합문화이다. 중국 아편전쟁이 그렇듯 과거엔 차로 세금을 치렀다. 또 한복의 옷차림, 다례를 위한 도구, 풍악과 예절의 시작이 다례에 온전히 담겨 있다. 차를 모르고서는 예절도 없고 예절을 모르고서는 차도 없다. 몸과 마음가짐을 바로 잡고 차를 마실 때 혼자 마시든지 아니면 둘, 셋이 마시던지 차를 같이하는 그 공간과 순간은 뜻깊다. 이러한 정신이 오랜 세월 흘러 몸에 익혀져 자연스러운 다례가 된다.
-어린 시절 어땠나.
▲원체 몸이 약했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아파 등교하지 못한 날이 많았다. 주위 사람들에게 ‘몸이 약해 시집이나 가겠냐’는 우려의 말도 많이 들었다. 음악가의 꿈을 저버린 것도 건강 탓이 컸다. 피아노에 소질이 많아 음악가의 꿈을 키웠다. 이화여대 음대를 나온 뒤 유학길까지 선택했지만 건강이 따라주지 않아 꿈을 포기해야만 했다.
-정작 당신은 어떤 어머니인가.
▲숙명일까. 일평생 차와 함께 한 어머니의 삶과 여러모로 닮아 있다. 어릴 적 친구 생일날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었는데 친구 어머님이 “우리 딸이랑 사이좋게 지내라”며 건네는 인사에 내 어머니께 그런 말 한 번이라도 들어봤으면 싶었다. (웃음) 어머니는 나 개인이 아닌 동네, 모든 분의 어머니셨다. 어릴 땐 어머니를 항상 남에게 빼앗긴 것 같았는데. 내가 우리 애들에게 그러고 있다. 궁중다례 전수 교육에 모든 혼을 쏟고 있다.
-차밭을 가꾼다고 들었다.
▲차를 대하면서부터 바깥 일에 신경을 전혀 안쓴다. 유행 같은 게 상관없어져 가꿀 겨를도 없다. 예전에는 남이 하면 궁금도 하고 나도 해야하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없어졌다. 차를 가까이 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충실해졌다고 할까. 그러면서 남을 위한 삶을 알아가는 것 같다. 여름이면 햇살에 얼굴이 바짝 탄다. 주말마다 가려고 노력 중이다. 차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를 심어 가꾸고 그곳에서 건강식 먹을거리를 얻기도 한다.
-다도는 어렵다.
▲전혀 어렵지 않다. 적은 돈을 들이고도 즐길 수 있다. 남을 위한 배려가 있으면 된다. 정성이 담긴 마음가짐, 단지 그뿐이다.
-가짜가 판을 친다. 차 구입은.
▲단체나 기업에서 저렴한 중국차를 최상급 차로 속여 파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때는 농림부장관상을 받았거나 인증이 있는 차를 구입하면 된다. 국내 차들은 대부분 생산, 제조 과정을 공평하고 정확한 기준으로 심사, 인증하고 있다. 차는 발효상태에 따라 녹차, 홍차, 우롱차로 나뉜다. 커피와 달리 카페인이 체내에 흡수되지 않아 특이 사항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편하게 마실 수 있는 게 차다. 녹차는 요즘처럼 더운 날에는 차게 마실 수 있고 홍차는 겨울에 꿀이나 우유와 함께 먹으면 감기몸살 초기 증상을 잡을 수 있다. 또 우롱차는 숙취해소에 제격이다. 말차는 녹차를 간 것으로 아이스크림 등으로 제조해 먹어도 좋다.
-인사동, 삼청동 등 차를 파는 곳이 많아졌다. 그런데 제대로 된 찻집은 드물어 보인다.
▲흉내내기에 급급한 곳이 아직 많다. 그래서 아는 사람들은 가끔 찻집을 해보라는 권유를 많이 한다. 하면 좋겠지만 아직 차 문화 보급과 육성이 시급하다. 일본 다도는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지만 일본 다도의 원형인 한국의 다례는 정작 우리나라에서조차 잊혀지는 실정이다.
어머니의 뜻을 기려 올곧은 마음으로 한국 다도의 대중화에 매진할 생각이다. 지금까지 해온 것과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내 평생을 교육에 힘쓰고 있지 않을까.
kmk@ieve.kr
▲김의정 이사장은.
1941년 쌍용그룹 창업주인 고 김성곤 회장(1913~1975)과 명원 김미희 선생(1920~81)의 차녀로 출생해 사단법인 자생회 이사, 국민대학교 이사, 예술의 전당 이사, 궁중복식연구원 이사, 한일 여성친선협의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의 다도 종가 재단법인 명원문화재단의 이사장으로 있으며 전통 다례의 재현과 생활 다례의 보급에 힘쓰고 있는 한편 한국 다도의 부흥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001년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27호 궁중다례의식 보유자로 지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