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키스 보스' 스타인브레너, 심장마비로 향년 80세 사망
OSEN 박광민 기자
발행 2010.07.14 03: 50

80세 생일이 지난 지 10일이 지났다. 그와 함께 했던 밥 셰퍼드가 세상을 떠난 지 이틀 만에 그 역시 '뉴욕 양키스'를 뒤로하고 2010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이 열리는 아침 하늘 조용히 나라로 가고 말았다.
미국프로야구(MLB) 최고 명문 구단인 뉴욕 양키스 전 구단주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향년 8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스타인브레너는 13일(이하 한국시간) 밤 10시 30분경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양키스 홍보 담당자인 마이클 마골리스는 14일 OSEN에 메일을 보내 "조지 스타인브레너 전 구단주가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80세를 끝으로 생을 마감했다"고 알려왔다.

양키스 구단은 "장례식은 비공식적으로 치러질 것이며, 추가적인 공식 행사는 추후에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양키스는 올 해로 스타인브레너가 구단주로서 37주년이 되는 해이다. '보스'로 불리는 그의 강한 리더십 덕분에 양키스는 세계 최고 스포츠 브랜드 가치를 지닌 구단이 되었다.
지난 1973년 1월 4일 스타인브레너는 CBS로부터 870만 달러에 양키스를 사들였다. 구단주가 된 뒤 첫 경기였던 4월 10일 양키스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1-3으로 패했다. 처음에는 야구에 대해서 잘 몰라 선수들로부터 조롱을 당하기도 했지만 그는 5년만에 팀을 강자의 위치에 올려 놓았다.
스타인브레너는 자신이 구단주로 함께 했던 지난 37년 동안 양키스를 이끌며 승리를 하나는 것, 그리고 승리를 거두지 못했을 때에는 비난을 하는 것, 이렇게 2가지만 알았다. 어떤 이들은 그를 비난 했지만 덕분에 양키스를 7차례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올려 놓았고, 11차례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승리를 위해서는 거금을 들여서라도 최고의 선수들을 불러 모았고, 성적이 부진한 감독에게는 가차없이 해고를 통보했다. 특히 1973년부터 1981년까지 9년 동안 8차례나 감독을 교체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노력이 지금의 양키스가 있게 했다. 양키스의 주장인 데릭 지터는 지난 4월 뉴 양키스다디움에서 만난 OSEN과 인터뷰에서 "나의 유일한 목표는 우리 티이 승리하는 것이다. 월드시리즈에 진출해서 우승 반지를 끼는 것"이라며 "야구 선수로서 은퇴를 하고 난 뒤에는 나의 영웅이자 그 구단의 구단주인 조지 스타인브레너와 같은 메이저리그 구단주가 되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말했다.
스타인브레너는 지난 2002년에는 '포브스지'가 선정한 최고의 영향력있는 스포츠인 1위에 오르는가 하면 양키스와 뉴저지 네트 등을 중계하는 'YES네트워크' 방송국도 소유하고 있다.
2009년에는 플로리다주 루츠에 자신의 이름을 딴 고등학교를 세웠고, 플로리다주에 위치한 양키스 스프링캠프 이름도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장이라고 지었다.
스타인브레너는 지난 2006년에는 뉴 양키스타디움 기공식에 참여 했으며 2009년 개장식에 참석했다. 뉴 양키스타디움은 총 4차례 방문 했으며 가장 최근에 경기장을 찾은 것은 4월 14일 2009년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전달식이 있은 홈 개막전에 참석했었다.
당시 경기장에서 이닝이 바뀌는 도중 중계 카메라가 스타인브레너를 잡자 5만여명의 관중들은 기립해 그를 향해 박수와 함성을 보냈다. 그 시간이 마지막 순간이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갑작스런 그의 사망 소식에 미국 야구팬과 관계자들이 한 마음으로 애도의 뜻을 표했다.
agassi@osen.co.kr
 
<사진>스타인브레너(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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