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만한 동네’ 찾아 30년 답사기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0.07.14 15: 55

이중환 ‘택리지’ 교본삼아 여행
80년대 중반부터 400곳 발품
경상‧전라도 출간…10권 예정

<신정일의 신택리지, 살고 싶은 곳>신정일|432쪽|타임북스 
[이브닝신문/OSEN=오현주 기자] 18세기 중반. 이중환은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마음 편하게 살 곳을 물색한다. 무려 20년에 걸친 현장답사 끝에 그는 환갑 무렵 결과물을 내놓는다. ‘택리지’가 그것이다. ‘택리지’는 정감록과 함께 조선 후기 가장 많이 필사된 베스트셀러였다.
‘택리지’의 강점은 현장감에 있었다. 장사하는 이들에겐 특산물과 물류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했고, 전국 지세와 명당을 들여다보게 했으며, 충실한 여행가이드북이기도 했다.
문화사학자이자 걸어서 여행하는 저자가 내놓은 ‘신택리지’는 ‘택리지’를 교본 삼아 발로 뛴 30년 답사여행의 결실이다. 다시 쓴 문화·역사 지리서인 셈이다. 그 길 끝에 저자는 이중환이 살았던 25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살아가는 문제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내놨다. ‘산다는 것의 의미와 가치’를 짚어내는 근원적 물음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어디서 살 것인가에 대한 고뇌어린 생각도 바뀌지 않았다. “사람이 살 만한 곳을 고를 때는 ‘지리’가 좋아야 하고, 그곳에서 얻을 경제적 이익인 ‘생리’가 있어야 하며, 고장의 ‘인심’이 좋아야 하고, 아름다운 ‘산수’가 있어야 한다”는 이중환의 핵심원리이자 방법론이 여전히 적용된다. 이 네 가지 중 하나라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살기 좋은 땅이 아닌 것이다.
책은 ‘택리지’의 ‘복거총론’을 교본으로 정해 그 요지를 현대적 관점에서 풀어간다. 택리지에서 가거지(可居地)의 원리를 체계적으로 서술한 부분이 복거총론이다. 이를 토대로 조선 전역은 사람이 살 만한 곳과 살 만하지 않은 곳으로 나뉜다.
사람이 살 만한 곳 중 가장 좋은 곳은 ‘계거’, 시냇가 근처라 했다. 물이 있으면 들이 있고 들이 있으면 오곡이 잘 자라니 그보다 더 살만한 곳이 어디 있겠냐는 거다. 그 다음은 ‘강거’인 강변마을이다. 바닷가마을 ‘해거’는 가장 살기 힘든 곳으로 꼽혔다. 계거로 이름이 난 곳으로는 예안과 안동, 순흥, 예천 등 태백산과 소백산 아래의 지역을 들었다. 대표적인 마을이 예안의 도산, 안동의 하회마을 등이다. 강거의 으뜸은 평양의 외성 지역이다. 평양은 백리에 달하는 넓은 들이 있고 강물의 폭 또한 넓어 많은 장삿배가 드나드는 등 생리가 좋은 데다가 산색과 지세, 들의 모양 등 지리와 산수가 바르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신택리지’는 총론격인 이 책을 시작으로 10권으로 묶인다. 최근 ‘경상도’와 ‘전라도’ 편이 출간됐다. 이중환 못지않은 답사가 바탕이 됐다. 80년대 중반부터 400곳 이상의 산을 오르고, 한강 낙동강 금강 섬진강 영산강 등을 발원지부터 하구까지 두 발로 걸었다고 했다.
그 옛날 이중환은 전라도와 평안도를 제외한 우리나라 전역을 돌아보았으나 어느 한 곳에서도 그 자신이 자리잡고 살 만한 곳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허무한 결론이긴 하지만 결국 이상적인 땅은 현실에 없으니 지금의 터전을 가꾸며 사는 것이 최선이란 얘기다.
euanoh@ieve.kr /osenlif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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