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루수 데뷔' 박정권, "볼이 오길 은근 기대"
OSEN 강필주 기자
발행 2010.07.16 08: 54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SK 외야수 박정권(29)이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2루수로 나선 소감이었다.
박정권은 15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한화와의 홈경기에 7-7로 맞선 9회초 2루수로 나섰다.

 
SK는 8회말 공격에서 이호준을 대타로 내세우면서 이날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야수 엔트리를 모두 소진했다. 무엇보다 앞서 최윤석, 모창민, 윤상균이 교체되면서 내야가 가능한 야수가 없었다.
따라서 9회초 수비에서 김성근 SK 감독이 어떤 내야 진용을 갖추게 할지가 상당한 관심사였다. 외야수 중 한 명은 반드시 내야로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김강민이 내야 글러브를 끼고 몸을 풀었지만 결국 박정권이 당첨됐다. 최정은 그대로 3루에 머물고 2루수 정근우가 유격수로, 대타로 나왔던 이호준이 1루수였다.
박정권은 벤치에서 천천히 걸어나와 2루수 자리의 땅을 골랐다. 1루수와 우익수로 출장, 멀티포지션이 가능한 박정권이었다. 그러나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2루수로 나서는 순간이었다. 좌투좌타 박정권이었기에 더욱 생소했다. 1루수를 제외하고 내야 포지션에서 오른손에 글러브를 끼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박정권도 초·중학교 때 유격수나 2루수로 나선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내야 포지션을 소화한 적이 없었다.
"순간 '내가 왜 여기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중들이 웃는 소리가 들려 살짝 창피하기도 했다. 옆에 있는 근우는 웃음을 참느라 자꾸 고개를 숙이더라. 나 역시 웃음이 나와 이를 앙 다물었다. 한화 쪽 덕아웃에서도 웃는 선수들이 보였다. 마운드에 서 있던 (이)승호가 나를 보더니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짓는 것 같았다. 볼을 던지는 거 보니 어떻게든 내게 타구가 오지 않도록 한다는 걸 알겠더라".
박정권은 웃음을 참지 못한 채 당시 심정을 털어놓았다. 이어 박정권은 "하지만 내게 타구가 오면 처리할 자신이 있었다. 은근히 볼이 안오나 기대했다. 1루수로 나서며 타구를 많이 처리해봤기 때문이었다"고 큰소리쳤지만 이내 "그런데 만약 주자가 나올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병살 처리를 하거나 견제 때 언제 들어가야 할지 걱정이 몰려왔다"고 또 한 번 웃었다.
그렇다면 마운드에 서 있었던 SK 마무리 이승호(29)의 심정은 어땠을까.
"강민이가 몸을 풀길래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연습 투구를 마치고 포수 (이)재원이가 2루로 송구를 하길래 돌아보는데 정권이가 보였다. 순간 정권이가 볼을 잡지 않도록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전날 휴식을 취하면서 볼끝이나 밸런스가 좋아서 다행이었다. 나도 좌완이지만 초·중학교 때 유격수를 보긴 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없었다. 정말 오른손 글러브를 낀 2루수를 옆에 두고 나온 경우는 없었다. 그렇게 어색하고 불안한 등판은 처음이었다"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결국 9회말 이재원의 끝내기 안타가 나오면서 박정권의 2루 경험은 한 번으로 끝이 났다.
박정권은 경기 후 부모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TV로 중계를 보던 부모님이 걱정스럽게 안부를 물은 것이었다. 이어 아내와도 통화를 했다.
그런데 박정권의 아내 김은미 씨는 달랐다. 지난 시즌 한국시리즈를 통해 박정권의 타격 지도로 유명세를 탔던 김 씨는 오히려 담담했다.
 
"감독님께서 다 생각이 있으셨겠지. 이기기 위해서는 그럴 수도 있는 거잖아. 군산 경기나 잘 하고 와".
letmeout@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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