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검게 물든, 어머니의 치아 “모두 충치는 아니에요”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0.07.16 11: 41

우연히 어머니의 입을 바라보다, 검은색으로 물든 치아 하나를 발견한 일이 있다. 이 치아은 과연 깎아서 없애야 하는 충치일까 고민한 일이 있다. 치과의사로서 검게 변한 이가 무조건 충치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한 고민이었다.
요즘은 치과가 많다 보니 여기 저기서 치료계획을 듣고 치료비 견적을 비교해보고 치료받는 사람이 많다. 그러다 보면 병원마다 충치 치료를 해야 하는 개수가 심하게 달라 당황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왜 같은 환자인데 충치의 개수가 다르다는 진단이 나오는 걸까?
치과의사로서 이러한 경우를 보자면 충치에 대한 견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치아의 색이 검게 되면 충치가 생겼다고 생각하여 치과를 찾게 된다. 하지만 전문가의 눈길은 일반인과는 다르다. 충치가 겉으로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세심히 보지 않으면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엑스레이 사진에만 보이는 경우도 있다. 아울러 검게 변한 치아가 사실은 충치치료를 하지 않아도 되는 건전한 경우도 있다.
왜 검은 색인데 건전한 치아이고,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것일까? 충치에 따른 치아의 반응을 통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충치가 생길 때 먼저 치아는 탈회(석회화 물질이 산성 용액에 녹는 현상)가 된다. 이 때 치아는 평소보다 더 밝게 변한다. 탈회가 심해지면 치아는 갈색, 또는 검은 색으로 변하게 된다. 이 상황에서 충치가 점점 더 심해질 수도 있지만 때로는 괜찮아지는 경우도 있다. 산성용액에 녹았던 치아가 침 속에 있는 석회화 물질이나 불소 등으로 재광화(석회화 물질이 치아에 쌓여서 이전의 녹은 부분을 메우는 현상)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재광화된 충치를 충치가 정지되었다고 하여 ‘arrested caries(정지 우식증)’ 이라고 부른다.
재광화가 된 치아는 일반적으로 어두운 색, 특히 검은색을 띠는 경우가 많다. 이 현상은 치아에서 충치가 잘 생기는 부위인 치아열구와 홈에서 잘 일어난다. 따라서 치아의 홈 부위만 까맣고 다른 부분은 괜찮다면 치료할 필요가 없는 재광화된 치아인 경우가 많다. 비온 뒤 땅이 더 굳는다고 이렇게 재광화된 치아는 색은 까맣지만 오히려 더 단단하고 충치진행이 안 되는 성질이 있다.
하지만 이것이 진행중인 충치인지 정지된 충치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눈으로만 보고 판단하기에는 부족하다. 이 경우 치과 기구로 만져보거나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보면 더 확실해 진다. 또는 정지된 충치인지 진행 중인 충치인지 여부가 모호한 경우도 있어, 의사에 따라 치료 계획이 달라질 수 있다.
진행이 정지된 충치라면 치료를 할 필요가 없지만 치과의사로서 느끼는 현실은 좀 다르다. 이러한 개념을 설명하더라도 잘 이해하지 못해 검은 치아를 치료 안 해 주었다고 따지는 사람도 있고, 제대로 치료를 안 해 주었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또한 만약의 경우 나중에 그 치아에 충치가 심해지면 환자는 당연 잘못된 의사를 만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검은 치아를 치료하고 돈을 받는다고 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어쩌면 충치 치료를 하는 것이 의사입장에서는 속이 더 편할 수도 있다.
어머니의 검은색 치아에서는 충치가 진행 중이었을까, 정지되었을까? 당시 모호하게 생긴 검은 반점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내가 잘 관리해 드리면 되겠지 생각하고 치료를 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되도록 치아를 깎지 않고 보존하고 싶은 것이 아들로서, 그리고 의사로서의 내 바람이다. /필립치과 신명섭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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