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수, "난 10개 중 9개는 슬라이더 던진다"
OSEN 박광민 기자
발행 2010.07.17 08: 20

투수라면 하나라도 더 다양한 구종을 던지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넥센 히어로즈 사이드암 박준수(33)의 손끝을 떠난 공 10개 중 9개는 슬라이더다. 삼성 라이온즈 전력 분석표에도 '박준수의 직구는 버리고 무조건 슬라이더만 노려라'는 말이 적혀있다. 박준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내 손끝에서 가장 자신 있게 던질 수 있는 공이 슬라이더이기 때문에 그 공만 던진다"고 말했다.
▲2006년 38세이브를 올린 특급 마무리 출신
박준수는 지난 2006년 현대 시절 61경기에 등판해 5승5패 38세이브 평균자책점 1.82의 호성적으로 맹위를 떨친 특급 마무리 출신이다. 당시 주무기도 슬라이더였다. 옆구리에서 빠르게 뿌려진 슬라이더는 직구와 같이 날아오다 홈플레이트 직전에 예리하게 꺾였다.

그러나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은 욕심이 도리어 화를 불렀다. 시즌을 마치고 일본인 인스트럭터로부터 싱커를 배우다 팔꿈치 부상이 왔다. 이후 조각제거 수술, 신경 수술 등 3차례의 수술과 긴 재활을 마치고 지난 6월 2일 605일만에 1군에 복귀했다.
1군에 올라온 뒤 "마운드에 다시 서는 것만으로도 기쁘다"고 말한 그는 올 시즌 소리 없이 강력한 중간계투 요원으로 호투를 거듭하고 있다. 박준수는 17일 현재 19경기 등판해 1승1패 평균자책점 1.77 WHIP(이닝당 안타와 사사구 비율) 0.84로 2006년 특급 마무리 투수시절 WHIP이 0.81이었다.
▲재활이 힘들다 느껴질 때마다 야구장을 찾았다
박준수는 지난 해 모든 시간을 퓨처스(2군)에서 재활을 했다. 1군에 올 기회가 없었다. 그는 야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들 때마다 야구장을 찾았다. 다른 선수들이 하는 것을 보며 "그래 내가 지금 이렇게 나태해지고 나약해지면 안 된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는 "지난 해 야구장에 15번 정도 왔다. 그 정도면 정말 많이 간 거다. 2군 선수들이 스스로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도 보고, 코칭 스태프와 선후배들에게 꼬박꼬박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하는 것이 스스로 다시 야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다지는 길이었다.
야구 선수들이 가장 힘들게 느끼는 부분은 재활 훈련이다. 사람이기에 '다른 친구는 안 아픈데 왜 나만 아플까'라는 생각을 먹게 된다. 그러다 보면 끝도 없이 그늘로 들어가게 된다. 박준수는 "재활은 자기와 싸움이다. 마운드에 다시 서겠다는 강한 마음을 먹고 스스로 밖으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처음에는 경기장 오는 것이 자존심이 상한다. 그러나 뒤에서 그런 마음을 먹는 것은 필요 없다. 선수는 경기장에서 실력으로 평가 받으면 된다. 지금도 재활을 하는 선수들이 많다. 나처럼 하라는 말은 못하겠다. 그러나 때가 되면 어떻게 되겠지라는 마음보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는 10개 중 9개는 슬라이더를 던진다
박준수는 지난 14일 목동 롯데전에 구원투수로 등판해 연장 11회초 첫 타자로 홈런1위 이대호와 승부를 했다. 이대호를 상대로 초구 볼, 2,3구 파울을 유도해 볼카운트 2-1으로 유리하게 잡았다. 4구째 바깥쪽에 꽉 차 보이는 공을 던졌지만 주심의 팔이 올라갈 듯 하다 멈췄다. 이후 이대호의 파울은 계속됐고 9구까지 가는 끈질긴 승부 끝에 헛스윙 삼진을 잡아냈다. 9개 모두 슬라이더를 던졌다.
'어디서 그런 배짱이 나오냐'는 질문에 "강타자가 나와도 내가 믿고 던질 수 있는 공이 슬라이더다. 내 손 끝에서 가장 자신 있게 떠날 수 있는 공이 가장 위력적인 공이라고 생각한다. 구종은 같은 슬라이더지만 속도차, 코스 등을 다르게 하면서 타자들이 다른 구종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한다"며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타자들과 승부를 피하려고 한다는 말이다. 나는 직구를 던진다는 생각으로 슬라이더를 던진다. 현재 내가 가장 잘 던질 수 있는 공으로 상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데이터 분석에 '박준수의 직구는 버리고 무조건 슬라이더만 노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들은 히어로즈 동료 손승락은 박준수에게 직구나 체인지업도 좀 던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박준수는 "그 데이터는 5년 전부터 있었어"라고 말했다. 물론 그 역시 전성기 때보다 자신의 투구에 만족스럽지 않다. 공 끝의 움직임, 속도, 제구까지 아쉬운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나 현재 자신이 가장 잘 던질 수 있는 공이기에 10개 중 9개는 슬라이더를 구사한다. 싱커에 대한 상처도 여전히 남아 있다.
▲올 시즌은 400만원을 들고 김성태와 함께 떠난 사이판 훈련 덕분
박준수는 지난 겨울 혼자 사이판으로 훈련을 가려고 했다. 내 공을 받아줄 포수가 없어 현지에서 시간당 10달러 미만을 주고 아르바이트생을 구하기로 했다. 그는 "그때 나는 사이판에 꼭 가야 올 시즌을 준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군에서 막 제대한 반가운 후배 김성태로부터 자신도 함께 가도 되냐는 전화가 왔다. 파트너가 생긴다는 마음에 기뻤다. 이 훈련 덕분에 둘은 올 시즌 넥센 마운드에서 꼭 필요한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이들은 한 달 동안 사이판에서 친 형제처럼 지내며 훈련에만 집중했다. 서로 공을 주고 받으면서 슬라이더를 못 던지는 김성태에게 자신의 주무기를 알려줬다. 올 시즌 김성태의 주무기는 슬라이더가 됐다. 박준수는 "나의 조언보다는 (김)성태가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컸기에 가능했다. 성태가 잘 하는 모습 보면 나도 뿌듯하다"고 흐뭇해했다.
현재 박준수의 가장 큰 바람은 아프지 않고 시즌 끝날 때까지 1군에서 마치는 것이다. 이기고 있을 때든 지고 있을 때든 긴장감을 갖고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지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그러나 경기에 나서면서 욕심이 생겼다. 그는 "홀드, 평균자책점 등의 단순 기록 보다는 피칭 내용에 스스로 만족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처럼 시즌 잘 마치고 성태와 사이판에 훈련이 아닌 놀러 가고 싶다"고 말했다.
agass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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