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레스토랑 사업가 홍석천
가게 오픈 후 14개월동안 매월 천만원씩 적자
게이바로 오해해 도망가는 손님 붙잡고 설명

3년만에 레스토랑 6개…이젠 한식 도전하고파
[이브닝신문/OSEN=백민재 기자] 그가 커밍아웃을 한지 올해로 10년째다. 사실 그때는 커밍아웃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연예계에서 퇴출당하고, 삶이 막막해진 그는 이태원에 작은 레스토랑을 냈다. 세상의 손가락질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서다. 지금은 수십억원을 거머쥔 성공스토리의 주인공이 됐다. 지난달에는 홍대 부근에 배우 이승연과 함께 레스토랑 ‘플레이’를 오픈했다. 홍석천의 6번째 가게다. 아직까지는 적자라고 한다.
-누가 먼저 동업을 제안했나.
▲제가 먼저였다. 사실 승연 누나의 남편이 제 친구다. 누나의 아이도 돌이 지났으니, 뭔가 선물을 하나 해주고 싶었다. 여기는 매장이 크고 직장인들이 많아 메뉴를 다양하게 했다. 이름도 그냥 ‘플레이’라 지었고. 처음에는 천연재료로 간을 맞춘 건강식이 콘셉트였는데, 홍대 쪽 손님들은 “음식에 뭔가 빠진 것 아닌가”라고 느끼더라. 그래서 메뉴를 조금씩 바꿔보고 있다. 다음달 부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한다.
-연예인 가게는 잘될 것이라 생각되는데.
▲그게 쥐약이다. 연예인이 식당을 차려서 잘되는 것은 한 달 정도다. “그 사람이 오픈했다는데 뭐지?” 하면서 가보는 것이다. 거기서 손님을 못 잡으면 다시는 오지 않는다. 보통 가게는 손님들이 웬만해서는 불평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연예인 가게라면 하나하나 꼬집어보기 시작한다. 더 힘들다.
-직원들은 연예인 사장을 어떻게 보는지.
▲일단 처음에는 좀 어려워한다. 사장+연예인이니까. 그런데 하루만 지나면 맞먹는다(웃음). 쉬운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 대신 혼을 낼 때는 따끔하게 혼낸다. 사실 요즘 젊은 애들은 어려운 일 하기 싫어하는데, 우리 직원들은 다르다. 일이 힘들고 월급도 적지만, 레스토랑 일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또 저한테서 뭔가를 배워가려는 모습이 정말 귀엽고 예뻐 보인다.
-레스토랑 사업에 도전한 이유가 있나.
▲커밍아웃을 하고 나서 2년을 놀았다. 연기 말고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야 했다. 저는 사람을 만나서 수다 떠는 걸 좋아하고, 패션과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았다. 레스토랑에는 그것들이 다 있었다. 레스토랑은 총체적인 뮤지컬 작품이다. 내가 연출하는 사람이고, 손님은 관객이고, 주방과 홀 직원들은 배우다. 저는 그냥 뮤지컬 연출가라고 생각한다. 처음 오픈한 가게는 이탈리아 음식점 ‘아워 플레이스’였는데, 이탈리아 음식이 제일 쉬워서 그 메뉴를 정한거다.
-처음에 힘들지는 않았나.
▲고생 많았다. 한 달에 천만원씩 꼬박꼬박 까먹었다. 무려 14개월 동안. 인건비에 재료비에…. 썩어 나가더라도 재료는 사 놔야 하니까. 어떤 손님들은 절 보고는 게이 바라 오해하고 도망갔다. 그러면 나가는 손님 붙잡아서 설명하고. 1년을 그러고 있었다. 손님은 없고, 왔던 손님들은 “다음에 오겠다”며 나가는 상황이 반복됐다.
-언제부터 잘되기 시작 했는지.
▲오신 손님들이 너무 고마워서 무릎 꿇고 메뉴를 받았다. 처음에는 손님들이 부담스러워 했다. 오히려 어쩔 줄 몰라 하고. 그게 통했는지, 조금씩 단골이 생겼다. 나중에 가게가 안정돼서 편하게 메뉴를 받으니까, 왜 이제는 무릎 안 꿇는지 묻더라. “무릎이 아파요~”라며 웃었다.
-3년 만에 레스토랑이 6개로 늘었다.
▲첫 레스토랑을 5년 정도 운영하면서 많이 배웠다. 그러다 두 번째로 ‘마이 타이’를 오픈했는데, 그게 대박이 터졌다. 지금이야 많이 퍼졌지만 그때는 태국 음식이 서울에서 막 뜨기 시작할 때다. 태국은 한국 사람들이 신혼여행을 많이 가는 나라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보냈으니, 서울에서도 태국을 느끼게 해 주는 공간이 있으면 괜찮겠다 싶었다.
-이름만 빌려달라는 제안은 없나.
▲정말 많다. 하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으려 한다. 과거 연예인 일만 할 때는 그런 제의에 솔깃하기도 했는데, 제 것은 아니다. 저는 숫자 개념이 별로 없다. 그냥 즐겁고, 새로운 걸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많다. 정말 돈을 많이 벌려면 그냥 제일 잘되는 ‘마이 타이’를 프랜차이즈로 만들면 된다. 아직까지는 돈을 버는 것보다 새로운 가게를 만드는 게 더 재미있다.
-강연 나가면 어떤 질문을 가장 많이 받나.
▲사업가의 성공 스토리도 있지만 “커밍아웃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가장 많다. 물론 제 대답은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이다. 후회 할 이유가 없다. 커밍아웃한지 딱 10년이 지났는데, 단 한번도 “왜 했지”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만큼 행복하다. 나를 찾은 것이니까. 다만 아쉬운 것은 당시 가족들이 너무 힘들어했다는 점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부모자식끼리만 알고 있어도 되는 문제지만, 저는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니까.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본 느낌은.
▲많이 남다르다. 너무 리얼해서 저도 놀랄 때가 있다. 저야 좋다. 제가 말로 표현해도 부족한 것들이 영상으로 나온다. 사실 커밍아웃 이후 제 복귀작이 김수현 선생님이 쓴 ‘완전한 사랑’(2003)이었다. 그때 커밍아웃을 한 동성애자 역할로 출연했다. 지금처럼 대놓고 표현하지는 않았고, 살짝만 다뤄졌다. 김수현 선생님은 제 은인이다.
-홍석천 이후 커밍아웃 한 연예인은 없는데.
▲당연히 못나오겠지. 제가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는 걸 봤으니 누가 나오겠나. 처음에는 많이 아쉬웠다. 혼자 싸우기가 힘드니까. 지금은 그냥 ‘내가 유일한 것도 나쁘지 않구나’ 생각한다. 경쟁력이 있지 않나. 희소성도 있고(웃음).
-레스토랑 사업이 가장 어려울 때는.
▲제가 제시하는 메뉴나 맛을 손님들이 이해하지 못할 때. 레스토랑이 어려운 이유는,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그들의 입맛도 100가지이기 때문이다. 그걸 다 맞출 수는 없다. 기준이 되는 맛을 찾아 제시하면 된다. 이 일은 스스로 즐기고 좋아하지 않는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 손님들 입맛이 다 다른데 그 불만을 어떻게 다 들어주겠나. 차라리 이미 만들어진 제품을 파는 게 훨씬 속 편하다. 쉽게 은퇴자금 몇 푼 남았다고 덤빌 일은 아니다.
-또 도전하고픈 레스토랑이 있나.
▲제대로 된 한식을 해보고 싶다. 요즘 정부에서도 한식의 세계화에 관심이 많은데, 저는 거꾸로 김치찌개나 청국장, 설렁탕 같은 것에 관심이 간다. 세계화라고 해서 고급스럽게 포장하는 게 다는 아닌 것 같다. 한국의 김밥, 떡볶이가 얼마나 맛있나.
nescafe@ieve.kr /osenlife@osen.co.kr
<사진>한철우(드가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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