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재발견, 구석구석 마을여행 김수남|404쪽|팜파스]
순창 고추장‧군산 장자리 등
전국 33개 마을 새롭게 조명

[이브닝신문/OSEN=오현주 기자] “무릇 길은 반듯하면 맛이 없다. 고속도로는 무작스럽게 빠르기만 할 뿐 구불구불 굽은 길을 가면서 느끼는 정감과 재미, 눈맛을 주지 못한다.” 대전시 대청호 두메마을을 찾아가는 길을 두고 하는 말이다.
“‘택리지’를 쓴 이중환은 전라북도에 그리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다. 지금의 정읍에 해당되는 태인, 고부는 물론이고 부안과 고창 일대의 해안지방이 사람이 살만한 곳은 못된다고 했다.” 전북 고창의 만돌마을 가는 길을 따르면서는 이중환이 준 야박한 점수가 탐탁지 않다.
슬로시티 청산도 당리, 누룩 내로 술 익어가는 금정산성마을, 삼베길쌈 솜씨를 엿볼 수 있는 안동포마을, 300년 된 요리를 맛보고 만들 수 있는 영양두들마을 등 한국의 마을들이 새롭게 도드라졌다. 멋, 맛, 쉼이 있는 전국의 33개 마을로 안내한다.
낙후되었다는 말이 ‘자연이 깨끗하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이라면 충청도에서 가장 낙후된 곳은 청양이라고 했다. 공주와 예산, 부여, 보령에 둘러싸여 내륙 깊숙하게 들어간 모양새부터 세상과 동떨어진 느낌마저 드는 곳이라고 소개한다.
순창고추장마을에 이르러서는 고추장 앞에 당연한 듯 붙는 ‘순창’에 대한 궁금증도 풀어놨다. 순창고추장의 명성은 조선 태조 이성계와의 인연으로 시작됐다. 고려 말 이성계가 회문산의 한 절에 무학대사를 만나러 왔다가 절 아래 농가에서 대접받은 조촐한 밥상에 올라온 고추장이 바로 순창 고추장이었다. 훗날 왕위에 오른 태조가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시 찾으면서 궁궐에 입성케 됐다.
군산 장자리마을에 다다라서는 개발에 밀려 운명을 다한 섬에 대한 한탄도 늘어놓는다. 섬의 시작은 별의 시작만큼이나 장엄하지만 인간의 필요에 따라 바다를 메우거나 다리라도 놓는 날에는 섬은 섬으로서 명을 다하게 된다는 탄식이다. 16개 섬을 비롯해 63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 숨막히게 아름다운 비경을 간직한 고군산군도가 새만금방조제 건설로 섬으로서 사망선고를 받고 있는 현실을 꼬집었다.
울산 외고산 옹기마을에선 항아리에 숨결을 불어넣는 장인들을 만났다. 한반도 최남단 마을인 마라리에선 한국에 존재하는 모든 ‘최남단’을 가진 작은 섬나라를 봤다. 귀농 1번지로 통하는 진안의 가막마을에선 최근 일고 있는 귀농귀촌 체험 프로그램을 경험했다. “뭐 얼마랄 꺼 있나. 전기세만 내면 되지.” 가막마을 귀농인의 집에 머물며 주인으로부터 농사짓는 법뿐만 아니라 농심까지 배웠다.
“나는 섬마을 소년이었다. 바다는 놀이터였고 배움터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비단 섬마을 소년이 아니었다고 해도 누군들 다르겠는가. 더 이상 살 수 있는 마을을 갖지 못한 도시인들의 비애와 바람을 한 권에 고스란히 심었다.
euanoh@ieve.kr /osenlif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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