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생활 '마침표' 양준혁의 18년 발걸음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0.07.26 13: 41

살아있는 전설이 은퇴를 택했다. '양신' 양준혁(41. 삼성 라이온즈)이 올 시즌을 마치고 18년 간의 프로생활에 마침표를 찍는다.
 
양준혁은 26일 구단을 통해 "아직도 체력적인 문제는 없지만 팀의 리빌딩을 위해 후배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 본인과 팀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은퇴 의사를 밝혔다. 그는 이미 지난 24일 대구 올스타전에서 은퇴를 시사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1993년 삼성에 1차지명으로 입단한 양준혁은 해태-LG를 거치며 프로 18시즌 동안 3할1푼6리 351홈런(1위, 26일 현재) 1389타점(1위) 193도루를 기록한 살아있는 전설이다. 누적 기록에 있어서는 국내 최고의 기록을 세웠으며 통산 타율(2000타석 기준) 부문에서도 3할3푼1리를 기록한 장효조(현 삼성 2군 감독)에 이어 2위를 기록 중일 정도로 정확성과 파괴력을 동시에 과시한 최고 스타.
 
'내 몸에는 파란 피가 흐른다'라는 이야기를 했을 정도로 양준혁이 삼성과 프랜차이즈 대구에 보인 애정은 대단했다. 영남대 졸업반 당시 이미 쌍방울에 2차 지명되었으나 삼성에 입단하기 위해 상무행을 택한 뒤 삼성에 1차 지명을 받은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 1992년 계명대 출신의 동기생 좌완 김태한이 1차 지명으로 입단했고 이듬해 양준혁이 삼성에 차례로 입단했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과 함께 90년대 중,후반 삼성 젊은 타선의 핵심으로 활약하던 양준혁은 임창용(야쿠르트)의 반대급부로 황두성(넥센), 곽채진(전 KIA-두산)과 함께 해태로 이적했다. 이 과정에서 은퇴 의사도 비췄으나 현역 생활을 이어가게 된 양준혁은 선수협 활동에 의해 LG로 트레이드(손혁)되는 과정까지 겪었다.
 
 
1999~2000년 가시밭길 같던 행보 속에서도 그는 맹위를 떨치며 이름값을 했다. 자신에게 어색해보이던 붉은 해태 유니폼을 입고서도 1999년 3할2푼3리 32홈런 105타점으로 홍현우-장성호-트래비스 샌더스-윌리엄 브릭스와 함께 파괴력을 자랑했다. 당시 해태 타선은 5명의 타자가 한 시즌 20홈런 이상을 기록하며 엄청난 힘을 과시했다.
 
LG에서의 양준혁은 정확성을 자랑했다. 선수협 활동으로 인해 임의탈퇴 위기를 맞기도 했던 양준혁은 2000시즌 3할1푼3리 15홈런 92타점에 이듬해 3할5푼5리 14홈런 92타점을 기록하며 '방망이 거꾸로 잡아도 3할'이라는 그의 실력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취득해 고향팀 삼성으로 복귀한 양준혁은 이후 3번의 우승을 푸른 유니폼을 입고 경험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무관의 제왕이라는 이미지. 그러나 그동안 그의 수상이력과 활약상을 번갈아 되돌아보면 꾸준했던 양준혁의 일면을 알 수 있다. 첫 해 신인왕 타이틀 획득을 시작으로 골든글러브 8회 수상(외야수-1루수-지명타자), 타격왕 4회, 최다안타 2회, 타점왕 1회의 수상이력. 통산 누적 기록에 있어 전부문 상위에 위치한 양준혁이지만 타이틀홀더로 수상한 상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음은 그의 기복이 크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마지막으로 기회가 된다면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과 2010년 팀의 한국시리즈우승에 기여할 수 있도록 마지막 힘을 쏟아 붓겠다"라며 마지막 남은 힘을 쏟겠다는 뜻을 밝힌 양준혁.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타격의 달인으로 우뚝 선 뒤 은퇴를 향해 걸어가는 그가 팬들의 박수 속에서 멋진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을 것인가.
 
farinell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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