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퀴즈 대한민국’ 44대 퀴즈영웅 임성모>
비슷한 연배 퀴즈영웅 충격…40년 피던 담배 끊어
퇴근 후 2시간 자료정리…직접 쓴 필기노트만 20권

우리말겨루기·일대백까지 퀴즈프로 3관왕 하고파
[이브닝신문/OSEN=장인섭 기자] 집앞에 서있는 트럭에서 예사롭지 않은 포스가 풍겨왔다. 17년 세월이 말해주듯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지고 녹이 슨 차체에서 인생역정 또한 녹록치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KBS ‘퀴즈 대한민국’ 44대 퀴즈영웅에 등극한 임성모 씨(58)는 경기·강원 지역을 오가며 트럭으로 화물을 운송하는 임시직 트럭기사다. 에어컨도 없고 난방도 되지 않는, 이제 폐차를 한다 해도 조금도 이상할 것 없어 보이는 17년 묵은 낡은 트럭. 임씨는 오랜 지기같은 이 트럭을 벗삼아 하루 10~12시간씩 도로 위를 달린다.
깨알같이 빼곡히 적어놓은 메모지와 노트를 햇빛가리개 삼아 트럭 차창과 계기판에 붙여놓고 외우고 또 외우기를 5년 이상 반복해 오고 있다. 실업계 고등학교 중퇴가 최종학력인 그가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퀴즈영웅’에 등극했을 때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다. 또 하나의 우연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시선과 함께….
그러나 그를 만나고 나서 세상에 우연이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아야 했다. 무더운 날씨에 작업을 마치고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퇴근한 임 씨를 방학동 자택에서 만났다.
-퀴즈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정말 우연한 기회에 KBS TV의 퀴즈 대한민국에서 비슷한 연배의 열쇠수리공 이용석 씨가 11대 퀴즈영웅이 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내겐 충격이었다. 나도 노력하면 될 것 같았다. 인생 터닝포인트였다. 40여 년을 피워오던 담배도 끊고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를 시작하면서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가?
▲운동하려면 준비운동이 필요한 것처럼 퀴즈프로그램 참가를 위해 준비공부가 필요했다. 명문대 학생 등 쟁쟁한 출연자들과 겨룰 자신이 없었다. 특히 직업이 트럭운전이다보니 공부할 시간이 부족했다. 또 정상적으로 과정을 마치지 못한 학력으로 무모한 도전에 나설 수는 없었다. 이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1년 반 동안 기초체력을 단련한 셈이다.
-준비공부는 어떻게 했나?
▲일단 무조건 외웠다. 제일 먼저 한 것은 한문 3000자 독파였다. 다음으로 4개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고등학교 지리부도를 이용해 각 나라의 면적과 인구 등을 암기했고 세계 모든 왕조의 계보를 눈감고 그릴 정도로 반복 암기했다. 또 기본에 충실하고자 3권짜리 표준국어대사전을 70% 가량 암기했다.
-평소 공부방법은?
▲아침 5시30분에 출근해 평균 12시간을 운전한다. 퇴근하면 곧바로 집에 들어와 2시간 정도 신문스크랩, 자료정리를 한다. 다음날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2시간 이상은 하지 않는다. 자료정리는 하나하나 직접 손으로 쓰는데 필기도 암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든 노트가 20여 권에 달한다. 또 메모지를 작성해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두고 짬짬이 외웠다. 운전할 때는 차창과 계기판에 붙여 신호대기 때나 교통체증으로 차가 밀릴 때, 업체에서 대기하는 시간 등을 이용해 집중적으로 암기했다. 암기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반복이다. 외우려고 노력하지 않고 시간 날 때마다 속독으로 훑어보기를 반복하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외워진다. 또 문제의 유형을 파악하기 위해 퀴즈대한민국, 일대백, 우리말 겨루기, 골든벨 등 국내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 4개는 빼놓지 않고 시청했다.
-운전중 공부는 위험했을텐데…
▲보통 시속 100㎞로 달릴 때 100m의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하는데 암기하는 동안에는 300m 이상의 거리를 두고 끼어들기 차량이 있으면 일부러 속도를 줄이는 등 안전운전에 특히 신경을 썼다.
-학업을 계속하지 못한 이유는?
▲보릿고개 마지막 세대로 충남 부여의 두메산골에 태어나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실업계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정상적인 과정을 마치지 못할 정도로 가정형편이 어려웠다(기억하고 싶지 않은 듯 그는 당시 이야기에 구체적인 내용의 언급을 피했다). 18세 나이로 군대에 입대해 하사관으로 7년을 근무했다. 군에 입대해서 가장 좋았던 것은 하루 세끼를 먹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쥐꼬리만한 하사 월급을 쪼개 남동생 3명의 뒷바라지를 했다. 동생들은 현재 초등학교 교감, 법무사로 근무하고 있고 막내는 얼마 전 경찰관을 퇴직했다.
-퀴즈영웅이 되고나서 크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찾았다는 것이 일단 가장 큰 변화다. 그리고 주변에서 알아봐 주시는 분들도 많이 늘었다. 일례로 톨게이트 지나갈때 수금원이 알아보고 악수를 청해오기도 한다.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스포츠 종목에는 세가지 부문에서 1위에 오르면 3관왕을 뜻하는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명예가 주어진다. 퀴즈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명예롭게 생각하는 퀴즈대한민국 퀴즈영웅이 됐으니 기회가 되면 ‘우리말겨루기’의 우리말 달인, ‘일대백’ 최후의 1인까지 달성해 퀴즈프로그램으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해보는 것이 꿈이자 소망이다.
-청년실업이 심각하다. 인생선배로서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실은 말은?
▲주제넘은 이야기지만 50대를 넘겨 소망하는 목표를 이룬 나 같은 사람도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난관이나 장애에 부딛혔을 때 사람인 이상 좌절할 수도 있겠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천천히, 그러면서도 꾸준히 목표를 향해 노력한다면 자신의 꿈을 꼭 이룰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ischang@ieve.kr/osenlif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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