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로드넘버원'을 통해 처음으로 시대극에 도전한 김하늘. 시대극이라, 또 전쟁극이라는 장르적 특성 때문에 그 어느 작품보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하지만 그런 노력을 배반하듯 시청률은 그리 좋지 않다.
모든 작품의 평가 기준이 시청률이 되어서도 안되고, 그럴수도 없지만 아쉬운 건 사실일 거다. 하지만 김하늘은 아쉬운 마음 앞에 작품에 대한 무한 애정을 쏟아낸다. "나는 '로드넘버원'을 '애정'한다"고 말하는 김하늘. '사랑'이 아닌 '애정'이라고 색다른 어휘를 구사는 그에게서 '로드넘버원'이라는 작품에 대한 애착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아침 소나기로 다소 선선해진 오전 김하늘을 강남에서 만났다. '로드넘버원'의 수수한 수연 대신 '온에어'의 승아의 모습으로 나타난 김하늘과 이번 드라마에 대해, 배우라는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로드넘버원'을 보고 있으면 배우와 스태프들의 노력과 고군분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130억이라는 제작비를 들먹이며 일각에서는 CG가 어설프다, 전쟁신이 실감이 안난다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하지만, 할리우드 편당 제작비로 전체 드라마를 만들어내야 하는 현실에서 이정도 때깔을 만들어내는 것도 박수 받을 만한 일이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매회 드라마을 시청하긴 하지만, 보다보면 그 신을 찍을 때 했던 고생들이 다 생각나요. 제가 출연하지 않는 신들을 볼 때는 그 고생들을 다 짐작하죠. 온 몸이 성할 날이 없었어요. 항상 멍이 들어 있었고, 급박한 상황들이 많아 촬영이 끝나고 차로 돌아오면 기절하기 일쑤였어요. 피 분장에 땀에 절어 있는데도 지울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당시 고생담을 털어놓는 김하늘은 그래서 한 장면도 허투루 볼 수 없다고 밝힌다. "거의 매회 눈물로 보는 것 같아요. 인물 한 사람이 다 소중하고, 또 고생 안한 연기자가 없으니까 더 절절해지죠. 시청률과 상관없이 저는 '로드넘버원'을 '애정'합니다. 제가 이 드라마를 애정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어요. 시청률이 잘 나와서 같이 고생했던 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시청률과 상관없이 수연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동안 행복했고, 지금도 그 캐릭터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크게 (시청률에) 연연해 하지 않아요."
드라마에 대한 애착이 컸던 만큼 연기에 대한 욕심도 컸을 터. 김하늘은 생각만큼 연기가 나오지 않을 때면 속상했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로드넘버원'은 130억 제작비가 들어가서 대작이 아니라 캐릭터가 대작이에요. 제가 맡은 수연이 어머니 같고, 고향 같고, 어떤 사람이든 어떤 상황이든 품을 수 있어야 하는 역이에요. 그래서 수연을 연기하기가 싶지 않았어요. 후에 장우(소지섭)와 또다시 재회하는 장면이 나와요. 오랜 전쟁으로 패닉에 빠진 그를 안아 주는 신이 있는데, 그때 표정과 몸짓에 상처에 짓눌린 한 인간을 보듬어주는 어머니 같은 심리가 다 나타나야 하죠. 근데 생각만큼 그게 잘 표현이 안되는 거에요."
"감독님도 트렌디 드라마 같은 연기같다고 하시고, 오랜 세월 연기하면서 나도 모르게 나에게 익숙한 연기가 있나 봐요. 바스트 신 찍을 때는 이렇게 연기하고, 저 신에서는 저렇게 하면 된다는... 그래서 장우와의 포옹신을 찍으며 한계를 많이 느꼈습니다."
연기 생활 13년째인 김하늘은 여전히 배우고 있는 중이다. 아직 배워야할 것도 많고, 하고 싶은 역도 많다고 밝히는 그에게 여배우로 늙는다는 것에 대한 질문을 했다.
"여자로서는 걱정이 되지만, 배우로서는 별로 걱정이 안돼요. 오히려 저 같은 경우는 연기를 하면 할수록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있어요. 얼마전 ‘무릎팍도사’에 윤정희 선배님이 나온 적이 있는데, '나는 은퇴한 적이 없다. 나는 항상 배우다'라고 하신 말씀이 너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저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전작 '온에어'에 비해 다소 수수한 모습으로 출연하는 김하늘에게 그래서 속상하지는 않냐고 물어본다. 전쟁 상황이라 피분장은 기본이고, 때때로 머리며 옷차림이며 신경쓸새 없이 흐트러져 있기 일쑤므로.
"수연이라는 캐릭터에 몰입해서 보시면 수연만이 주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거에요. 사실 저는 외모에 크게 신경 쓰면서 연기해본 적이 없어요. 데뷔 초에 내가 자신감이 있어서 연기를 시작한 게 아니라, ‘넌 할 수 있을 거야’라는 주변의 격려로 연기를 시작한 터라 항상 ‘어떻게 하면 못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까 거기에 초점을 맞춰 연기를 했거든요. 그나마 ‘온에어’ 때 제 외모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던 것 같아요."
극 중 소지섭과 윤계상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김하늘은 얼마전 소지섭과의 러브신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촬영 들어가기 전 감독님이 '여명의 눈동자' 러브신을 보여주셨어요. 보고 깜작 놀랐습니다. '어떻게 찍지? 고민했는데, 나중에는 다 알아서 해주시겠지' 생각하며 자포자기했죠. 예쁘게 잘 나온 거 같습니다. 생각보다 심심하다고 하시는 분도 있는데 후반부에 또 나올 거에요.(웃음)"
팬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배우로 남고 싶다고 소망을 밝힌 김하늘은 "내가 저걸 할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연기를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행복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작품을 찍을 때는 언제 끝나나, 힘들다 생각하다가도 양수리 세트장에 환한 조명이 켜 있는데 내가 그 속에 없을 때는 그렇게 질투가 난다"고 말한다.
천상 배우인 이 사람. 13년 동안 수많은 작품으로, 자신의 다른 모습을 보여줬던 김하늘은 아직도 연기가 대한 갈증이 끝이 없어 보인다. 차근차근 팬들에게 신뢰를 쌓아가고 있는 김하늘. 그의 바람대로 감독이나, 소재나, 장르 때문이 아니라 그의 이름 석자만으로 표를 사고, 채널을 돌리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bonbon@osen.co.kr
<사진> 손용호 기자 farinell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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