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 투수가 마운드에 있을 때 왼손 타자를 대타로 내세우고 좌투수가 등판했을 때 오른손 타자를 출격시키는 것은 모든 감독이 선택하는 전략 중 하나다. 타자 시점에서 다가오는 공을 때려내기가 더욱 수월하기 때문.
그러나 저마다의 개성이 뚜렷한 인간이 하는 야구인 만큼 그에 반대되는 예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지난 28일 4-3 대형 트레이드를 통해 LG 트윈스에서 SK 와이번스로 적을 옮긴 안치용(31)도 소수의 경우 중 하나다.

지난 2008시즌 101경기에 출장해 2할9푼5리 7홈런 52타점을 기록하며 '연결형 중심타자'의 면모를 비췄던 안치용. LG가 사상 두 번째 최하위를 기록하는 와중에서 안치용은 로베르토 페타지니와 함께 분전하며 팬들로부터 '난세 영웅'이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입단 동기 박용택이 지난해 탁월한 타격 능력으로 주전 자리를 재탈환하면서 안치용은 다시 백업 신세로 전락한 채 최근 1년 반 동안 침체기를 걸어야 했다. 지난해 전지훈련-시범경기서 최고의 활약상을 보이던 안치용은 정작 페넌트레이스에서 2할3푼7리 5홈런 30타점에 그치며 어렵게 잡은 기회를 스스로 발로 차 버린 시즌을 보내고 말았다.
올 시즌에도 LG 유니폼을 입고 1군에서 단 16경기 출장에 그쳤던 안치용. 그러나 최근 두 시즌 동안 김재박 전 감독과 박종훈 감독이 간과한 점도 있었다. 안치용이 왼손 투수보다 오른손 투수에 오히려 강점을 보였다는 것.
2007시즌 이후 안치용은 오른손 투수를 상대로 3할6리(409타수 125안타, 기록출처-www.statiz.co.kr) 9홈런 65타점을 기록한 반면 왼손 투수를 상대로는 2할1푼(224타수 47안타) 3홈런 18타점에 그쳤다. 안치용이 감사하게 생각하는 지도자 중 한 명인 김재박 전 감독은 지난 시즌 안치용을 왼손 투수 상대 대타로도 종종 기용했으나 성적은 1할3푼(92타수 12안타)에 그쳤다.
오히려 안치용은 지난해 오른손 투수를 상대로 3할1푼1리(132타수 41안타)를 기록하며 강점을 나타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안치용에게는 이론을 거스른 역발상적인 기용이 어울렸을 것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트레이드 단행 주축 중 한 명인 민경삼 SK 단장은 "안치용이 이번 트레이드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여전히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는 '캐넌포' 김재현이 올 시즌 후 은퇴를 선언했고 좌투 상대 대타요원으로 기대를 모으던 윤상균이 LG로 반대급부 이적한 SK의 현 상황과 데이터를 중시하는 김성근 감독의 성향을 생각해보면 안치용은 오히려 우투 상대 오른손 타자로도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최소한 경기 중후반 승부처 상황에서 상대 벤치를 혼돈에 빠뜨릴 수 있는 대타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
실제로 안치용은 이적 공식 보도자료 발표(오후 1시 45분) 후 4시간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3번 타자 좌익수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뒤 5타수 2안타로 좋은 활약을 펼쳤다. 안치용의 2안타는 김광삼-오카모토 신야, 모두 오른손 투수로부터 뽑아낸 안타다. 단 한 경기 표본이지만 LG시절 투수별 기록의 증거자료가 될 만한 기록.
주전 좌익수 박재상이 부상에서 복귀해 올시즌 후반기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더라도 효용 가치는 충분하다. 군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으나 일단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 1차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김강민이 만약 올 시즌을 마치고 병역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경우까지 생각하면 주전 외야수 후보로도 경합할 수 있는 안치용의 영입은 분명 이득이 될 수 있다.
2002년 안치용이 LG에 입단할 당시 소속팀 감독으로 그를 지켜봤던 김성근 감독은 "성실한 선수는 아니었다. 다만 갖다 맞추는 자질은 분명 뛰어났다"라며 안치용의 프로 초년병 시절을 회상했다. 신일고 시절 야구천재로 주목받았으나 연세대 입학 후 긴 침체기를 걸었던, 알찬 1시즌을 보낸 뒤 다시 침체기를 걸어야 했던 안치용이 새 소속팀에서 다시 한 번 재도약에 성공할 것인가.
farinelli@osen.co.kr
<사진> SK 와이번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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