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까지 활약했던 전 소속팀의 발목을 연이틀 잡아낸 '이적생 듀오'의 활약이다. '있는데' 정원석(33)과 '신시도 청년' 이대수(29. 이상 한화 이글스)가 팀의 3연패 후 2연승에 결정적인 수훈을 세웠다.
정원석과 이대수는 지난 7월 30일, 31일 열린 잠실 두산전에서 잇달아 결승타를 때려내며 소속팀 한화의 4강 경쟁권 진입 가능성을 높였다. 정원석은 3연전 1차전(30일)서 1회 선제 결승 중월 만루홈런으로 4-2 승리를 견인했으며 이대수는 2차전(31일) 1-1로 맞서던 4회 결승 1타점 2루타를 작렬하며 6-3 승리에 공헌했다.

특히 이들은 지난해 두산에서 고정적인 출장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설움을 안고 차례로 한화에 새 둥지를 틀었다. 둘 다 2007~2008시즌 2년 연속 한국 시리즈 진출에 공헌한 선수들이었으나 두산 내야진이 두꺼워지면서 기회를 잃고 이적을 통해 새 야구인생을 써내려가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 정원석, 11년 만에 맡는 풀타임 주전 시즌
두산 시절 정원석을 지칭하는 수식어 중 하나는 '양아들'이었다. 김경문 감독은 선구안을 갖추고 있었으나 나이로 인해 배트 스피드 저하 현상을 보인 '안샘' 안경현(SK)의 대체자로 정원석을 지목한 바 있다. 2008시즌 전에는 안경현을 전력 외로 분류하고 1루수 자리에 정원석을 놓고 그 해 시범경기서 출장기회를 부여했다.
정원석을 향한 팬들의 비난은 극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안경현을 대신한 정원석의 활약도가 그 공백을 상쇄할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 그러나 이는 시범경기에서의 활약이었다. 시즌 개막 이후 한 달간 정작 정원석의 선발 출장은 두 번에 그쳤다. 안경현을 대신해 1루 자리를 꿰찬 것은 최준석이었고 최준석의 무릎 부상 재발 후에는 오재원이 1루를 지켰다.
"기록을 찾아보라. 그 해 정작 내 선발 출장 기회는 얼마 없었다". 2년 전을 돌이켜 본 정원석은 두산 시절 수식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비추며 억울함을 감추지 못했다. 2루에서도, 1루에서도 안경현의 그림자에 만족해야 했던 선수가 바로 정원석.
설상가상 지난 시즌에는 연봉조정신청으로 인해 구단과 마찰을 빚었다. 전지훈련 출발 하루 전 김 감독의 설득에 가까스로 구단 제시액에 도장을 찍고 캠프에 참여한 정원석이었으나 정작 그 해 1군에서 그의 자리는 없었다. 정원석 외에도 오재원, 김재호, 이원석이 내야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기 때문.
결국 정원석은 지난해 9월 2군 일정 종료와 함께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고 '실직'했다. 2달 간의 방황 끝에 11월 KIA의 남해 마무리 훈련에서 테스트를 받던 도중 동국대 시절 은사인 한대화 감독의 한화가 연락을 취했다. 11월 21일 이범호(소프트뱅크)의 일본 이적이 확정된 날이었다. 정원석은 그날을 되돌아보며 "범호가 날 살렸지"라며 웃었다.
자칫 은퇴 위기에서 한화 유니폼을 입은 정원석의 올 시즌 성적은 2할8푼8리 5홈런 27타점 11도루.(7월 31일 현재) 지난해까지 한 시즌 최다 타석(122타석, 2006년) 기록의 두 배가 훨씬 넘는 327타석에 들어서 남긴 성적이다. 10개의 실책을 기록 중이지만 최근에는 어깨 부상 중인 장성호를 대신해 1루에도 나서는 등 보이지 않는 수비 공헌도도 결코 낮지 않다.
4강 팀 투수진에 더욱 강한 면모는 정원석의 가치를 더욱 높여준다. 올 시즌 친정 두산을 상대로 한 정원석의 올 시즌 기록은 3할5푼7리 1홈런 7타점. 여기에 선두 SK를 상대로는 3할9푼5리, 2위 삼성에는 3할1푼7리를 기록 중이며 4위 롯데와의 경기에서는 3할5푼3리의 타율을 보여주고 있다. 두산 시절 김 감독이 바라던 모습을 오히려 한화 소속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데뷔 후 두 번째 만루홈런을 때려낸 그날 정원석은 "친정팀 상대라 더욱 이기고 싶었다"라며 "경기를 많이 뛰면서 페이스도 많이 좋아지는 느낌이다. 더욱 안정된 수비를 보여주고 싶다"라는 말로 주전으로 꾸준히 기회를 잡고 있는 첫 풀타임 시즌을 알차게 보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 이대수, "타격감이 빨리 올라왔으면"
지난해 11월 16일 이대수는 동료들이 잠실구장에서 마무리훈련을 하던 잠실구장에서 홀로 정장 차림으로 구단 관계자, 선후배와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혼자 사복을 차려입은 이유를 묻자 그는 "대전으로 갑니다"라며 다소 어색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당일 오후 4시 30분 경 두산은 이대수가 조규수+김창훈의 반대급부로 한화에 새 둥지를 틀었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2007~2008시즌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공헌한 유격수가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 프로 데뷔 후 세 번째 팀을 향해 떠난 순간이었다.
2007시즌 초 나주환(SK)과 맞바뀌어 두산 유니폼을 입은 이대수는 그 해 109경기에 출장해 2할5푼2리 3홈런 36타점을 기록하며 2년 연속 풀타임 출장에 성공했다. 그러나 한화와의 플레이오프 도중 고동진과 부딪히며 무릎 부상을 입은 뒤 SK와의 한국시리즈 도중 조동화와의 충돌로 부상 부위에 더 큰 충격을 입었다. 이 후유증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정면 타구에 달려드는 수비가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지난해 다친 무릎 상태가 좋은 편이 아닌 것 같았다". 2008시즌 초 이대수를 2군으로 내려보내며 김 감독이 밝힌 이대수의 2군행 사유였다. 그 해 후반기 4할9리의 고감도 타율을 자랑하며 주전 유격수 자리를 되찾았으나 김 감독의 믿음도 옅어진 순간이었다.
기존 주전 유격수 손시헌이 상무에서 제대해 지난해 복귀한 뒤 이대수의 기회도 사라졌다. 무릎 부상 후유증은 벗어났음을 증명해야 했던 이대수는 지난 시즌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손시헌의 활약상을 지켜보며 부러움과 아쉬움을 동시에 느꼈다.
"무릎 부상을 털어냈던 만큼 주전 경합의 장을 앞두고 내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실력 경합을 벌일 기회가 시헌이 형보다 조금 모자라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이제는 한화에 왔으니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우선이다". 1년 전 아쉬움을 돌아보면서도 현재에 충실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이대수의 이야기였다.
그의 올 시즌 성적은 2할1푼 4홈런 28타점에 5실책. 6월서부터 뚝 떨어진 페이스 때문에 고생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무릎 부상 이후 "풀타임 시즌을 잘 치를 수 있을 것인가"라는, 자신을 둘러싼 선입견이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선수 본인의 부담이 크다.
"빨리 타격감이 살아나야 할 텐데 생각만큼 올라오지는 않는다. 지난 번 (류)현진이가 등판했던 삼성전(7월 28일)에서도 스스로 해결했더라면 팀이 승리했을 텐데 아쉽다".
지난 3년 간 이대수는 시즌 후반기에 3할1푼 대의 좋은 타격성적을 보였다. 아직 후반기 4경기서 14타수 2안타에 그치고 있는 이대수가 친정팀을 상대로 때려낸 결승타를 기점으로 '후반기 사나이'의 면모를 재현할 것인가.
farinelli@osen.co.kr
<사진> 정원석-이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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