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팬 황당하게 만든 박찬호 '세가지 잘못'
OSEN 이지석 기자
발행 2010.08.07 00: 59

[OSEN=이지석 미국 통신원] 최근 뉴욕 양키스에서 방출되는 아픔을 겪은 박찬호(37)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유니폼을 입고 7일(한국시간)부터 출격 대기를 한다. 상대는 과거 다저스 시절 무수히 상대했던 콜로라도 로키스. 박찬호는 허약한 파이어리츠 불펜에 숨통을 틔워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파이어리츠는 박찬호의 7번째 메이저리그 팀이다. 1990년대 말 다저스의 에이스로 군림했을 때 이처럼 이 팀 저 팀 떠돌아 다니는 '저니맨'으로 전락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월드시리즈 우승의 꿈을 위해 최강 뉴욕 양키스로 둥지를 옮겼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1994년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메이저리거가 된 박찬호. 올스타에도 뽑혔고, 통산 122승이나 거두며 뚜렷한 족적을 남긴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잘못된 선택 몇 가지로 인해 힘든 인고의 세월을 겪기도 했다.
 
이제는 과거지사가 됐지만 우선 박찬호의 첫 번째 잘못된 선택은 2002년 FA 자격을 얻은 후 텍사스 레인저스와 계약한 것이다. 1999년과 2000년 맹활약으로 박찬호는 5년 6500만달러라는 초대박 계약을 맺으며 '천만장자' 대열에 올라섰다. 하지만 여름이면 섭씨 40도를 훌쩍 넘는 홈런 공장장 알링턴 볼파크를 홈으로 사용하는 레인저스와 궁합은 너무 맞지 않았다.
 
2000년 다저스는 4년 4000만 달러를 제시하며 박찬호를 붙잡으려 했다. 허리가 좋지 않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다저스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 사 장기계약을 제시했던 것이다.
 
당시 박찬호는 FA를 선언하며 팀을 고르는 첫 번째 조건으로 우승에 얼마나 근접한 팀이냐는 점을 꼽은 바 있다. 물론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영입한 레인저스가 우승 후보로 보였을 수 있겠지만, 야구는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니라는 점을 알았어야 했다. 만약 레인저스 대신 다저스에 잔류했더라면 오래 전에 노모 히데오가 보유하고 있는 '동양인 최다승'의 영예는 박찬호의 몫이지 않았을까.
 
두 번째 잘못된 선택은 2009년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이적을 꼽을 수 있다. 2007년 박찬호는 뉴욕 메츠와 계약을 맺었지만 딱 1경기에 출전했을 뿐 시즌 내내 마이너리그를 전전했다. 심지어는 트리플 A에서 방출되는 황당한 사건까지 겪기도 했다. 도무지 재기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박찬호를 거둬준 팀은 바로 친정 다저스였다.
 
시즌 개막은 트리플 A에서 했지만 곧 메이저리그로 승격한 박찬호는 4승4패2세이브 방어율 3.40의 뛰어난 성적을 올리며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역시 다저스와 궁합이 잘 맞는다는 점을 확인시켜준 셈. 박찬호가 2001년 다저스를 떠난 이후 처음 기록한 3점대 방어율이었다. 샌디에고 파드리스 시절이던 2006년 4.81을 기록했을 뿐 나머지 시즌은 모두 5점대 이상의 참혹한 방어율을 보였다.
 
하지만 박찬호는 선발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해 다저스를 내치고 2009년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이적했다. 처음에는 5선발 경쟁에서 승리를 거둬 자신의 뜻을 이루는 것처럼 보였지만 계속된 부진으로 불펜으로 강등당한 뒤 다시는 선발로 복귀하지 못했다. 그나마 불펜으로 돌아선 후 위력적인 구위를 찾아 필리스의 월드시리즈 진출에 한 몫을 했다.
 
꿈의 무대를 밟아보는 소중한 경험을 했지만 궁합이 맞는 다저스에서 뛰었어도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잘못된 선택은 양키스행이다. 필리스는 박찬호를 잡기 위해 불펜투수로는 파격적인 300만 달러 이상의 연봉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FA 시장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박찬호는 필리스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우를 범했다. 
 
시간만 흘러가고 필리스의 조건을 능가하는 팀이 하나도 나오지 않자 당황한 박찬호는 선발 경쟁을 보장한 시카고 컵스와 우승 가능성이 높은 양키스를 놓고 최후 고민을 하다 후자를 택했다. 양키스가 제시한 연봉은 필리스는 물론 컵스보다 적었다. 양키스 유니폼을 입은 박찬호는 "돈보다 우승을 위해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기로 했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9년 전 다저스를 떠나 레인저스로 이적했을 때를 그대로 반복하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정말 우승 가능성이 첫 번째 조건이었다면 2년 연속 월드시리즈에 나섰던 필리스의 좋은 조건을 뿌리쳤다는 것과 앞뒤가 맞지 않는다.
 
시즌 초반 셋업맨으로 중용됐던 박찬호는 조 지라디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흔히 말하는 불펜 '패전조'로 전락했다. 방어율은 무려 5.60이나 됐다. 결국 선수 생활 내내 아메리칸리그에서는 단 한 번도 5점대 미만의 방어율을 기록하지 못한 셈.
 
그토록 월드시리즈 우승에 목을 메던 박찬호는 이제 꼴찌팀 파이어리츠 유니폼을 입는 처량한 신세가 됐다. 그나마 구위가 여전히 좋다는 점을 인정받아 웨이버로 공시된 박찬호를 파이어리츠가 그 권리를 사들인 것이다.
 
이번 시즌을 마친 후 박찬호가 파이어리츠에 잔류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늘 주장하던 대로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파이어리츠를 떠나야 한다는 점을 누구보다 박찬호 본인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우승 가능성이 있는 강팀으로 이적하기 위해서는 남은 한 달 반 동안 어떤 성적을 거두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확실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하면 꼴찌팀 파이어리츠조차도 박찬호에게 아무런 조건을 제시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선수 생활의 황혼기에 접어든 박찬호에게 더 이상 잘못된 선택을 할 시간이 없다. 타고난 성실함으로 오랜기간 메이저리그를 풍미해온 박찬호가 명예롭게 퇴장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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