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만 떠는 라디오, 가수는 떠난다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0.08.07 08: 49

[OSEN=손남원의 연예산책] FM 라디오의 음악프로가 달라지고 있다. 노래 보다 수다 중심으로 바뀌는 중이다. 어떤 음악을 들려주느냐가 중요하기 보다는 어느 게스트를 초청했는지에 청취율이 영향을 받는 세상이다.
또 인터넷, 모바일 기기의 발전과 더불어 듣는 프로에서 TV 스타일의 보이는 라디오를 선호하는 세태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라디오 프로의 진행 현장을 화면으로 보고 듣는다? 이는 진화가 아니고 개성을 잃어버린 퇴보일 수 있다는 게 골수 라디오팬들의 하소연이다.
음악프로가 본연의 자세를 잃어가면서 실력파 가수들이 DJ를 외면하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 1990년대까지 음악프로 PD와 DJ는 가요 관계자 사이에 절대권력으로 군림했다. 자신의 노래를 한 번이라도 더 전파를 타게하려는 가수와 그 매니저들의 발길이 음악프로 문턱을 닳도록 넘나들던 시절이다.

그러나 정작 음악프로가 노래보다 수다, 그리고 비주얼에 신경을 쏟으면서 가수들 역시 TV와 케이블 가요나 예능프로 쪽에 더 공을 들이고 있다. 인기 예능의 말미에 잠깐씩 등장하는 뮤직 비디오 소개에 말그대로 올인하는 분위기다.
인기 아이돌과 걸그룹 멤버, 개그맨 등 화제 중심의 스타 진출이 부쩍 늘어난 DJ, MC 세계의 성공 공식도 달라졌다. 잘짜여진 선곡을 바탕으로 노래와 노래 사이의 긴장을 풀고 차분하게 분위기를 이끄는 진행 실력은 이제 DJ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 요건이 아니다.
TV 리얼리티 예능의 MC처럼 출연진들과 웃고 떠드는 새 큰 웃음 한방을 터뜨릴 순발력을 갖춘 재주꾼들이 득세하고 있다. 이는 게스트를 고를 때도 그대로 적용된다. 재치 있는 입담과 즉석 라이브도 불사할 실력을 갖춘 진짜 가수들은 어느새 라디오 출연을 멀리하고 시끌벅적 화제 만발의 비주얼 스타일 게스트가 음악프로에 넘치고 있다.
라디오 음악프로가 연예인들의 신변잡기와 갖가지 들춰내기 토크로 채워지기 시작한 건 불과 수 년전 부터다. 2000년대 초반들어 TV 예능프로들이 연예인 출연자의 마구잡이 자극성 고백과 동료 비방 등으로 시청자 관심을 모았고, 라디오 음악프로도 청취률을 올리느라 TV 예능의 나쁜 전철을 그대로 밟았던 게 진보 아닌 퇴화의 원인이다.
그렇다보니 최근 라디오 음악프로에는 온갖 구설수와 방송 사고 등이 끊이질 않고 있다. 보이는 걸 중요시하다보니 베테랑 DJ조차 소위 인증샷이란 걸 찍어 세간의 화제를 모으는 세상이 됐다. 게스트와의 말장난에 아까운 방송 시간 상당 부분을 할애하면서 새롭게 자리잡은 폐단이다.
오랫동안 가수이자 DJ로 활약했던 이문세는 한 수상식장에서 “보이는 라디오가 결코 차선책이 아니다”며 “본래 라디오만이 가지는 정통성에서 벗어나 비주얼에 따라가기 위해 좋지 않은 화질에 조그마한 화면의 ‘보이는 라디오’를 지향하는 것은 오히려 라디오의 입지를 좁아지게 만들뿐”이라고 밝혔던 바 있다. 보는 매체로서 라디오는 절대 TV를 따라갈수 없다는 진리를 담은 말이다.
 
TV의 보급으로 힘을 빼앗겼던 라디오는 듣기 전용 매체로서 특화에 나서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었다. 라디오 속 음악프로가 지금까지 가요팬들의 많은 사랑을 독차지한 배경도 분명히 그 안에 있다. 본질을 자꾸 망각하는 라디오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엔터테인먼트팀 부장]mcgwir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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