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가 날 소설가 만들었어"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0.08.11 15: 44

김수환․박경리․박수근 등
박완서가 맺은 인연 줄줄이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268쪽|현대문학
 
[이브닝신문/OSEN=오현주 기자] “또 책을 낼 수 있어 기쁘다. 내 자식들과 손자들에게도 뽐내고 싶다. 쓰는 일은 어려울 때마다 엄습하는 자폐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구하고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켜 줬다.”
작가 박완서가 4년만에 신작을 내놨다. 그 기간 동안 쓴 산문들을 묶었다. 시간이 흘러도 사람과 자연, 세상에 대한 그의 시선은 여전히 따뜻해서 김수환 추기경, 박경리 작가, 박수근 화백 등 자신의 삶에 이어진 인연과 사랑에 아파하며 고마움을 전한다.
일흔아홉의 노작가는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을 감추지 않고 드러낸다. 작가의 못 가본 길은 6·25로 인해 좌절된 젊은 날 그의 못 이룬 꿈이다. “가본 길보다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내가 놓친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이 훨씬 초라해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토록 많은 작품에 털어놨으면서도 평생에 걸쳐 아직도 풀지 못한 한국전쟁에 대한 회한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올해가 전쟁 발발 60주년이기 때문인가. 애통을 넘어선 지는 오래겠지만 못 이룬 꿈에 대해선 체념이 되질 않는 모양이다. “6·25 경험이 없었으면 내가 소설가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나도 느끼고 남들도 그렇게 알아줄 정도로 나는 전쟁경험을 줄기차게 울궈 먹었다.” 그래도 그는 아직도 할 말이 얼마든지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이해 못할 세상에 대한 날선 비판도 서려 있다. ‘연륜으로도 머리로도 사랑으로도 상식으로도’ 이해하지 못할 것 천지였다. 경제제일주의가 만들어낸 황폐한 인간성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더 나아가 무너져 내린 남대문이나 천안함 침몰 사건 앞에선 오히려 자신의 ‘뻔뻔스러운 정의감’과 ‘비겁한 평화주의’에 대해 반성한다. 단순한 한 개인을 넘어 한국현대사를 온몸으로 견뎌온 역사의 증인이 됐다가도 작가만의 상처를 되새기는 말할 수 없는 연민과 회한 속 인물이 되기도 한다.
그가 걸어온 기나긴 길에 대한 생명력은 내일로도 이어진다. 앞으로 몇 년이나 더 글을 쓸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으나 그가 내린 작가로서의 새 다짐은 ‘남의 책에 밑줄을 절대로 치지 않는 버릇부터 고치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신이 솎아낼 때까지는 이승에서 사랑받고 싶고, 필요한 사람이고 싶고, 좋은 글도 쓰고 싶으니 계속해서 정신의 탄력만은 유지하고 싶다”고 썼다.
작가는 자신의 나이가 이미 여든에 이르렀음을 누구보다 자신에게 먼저 상기시킨다. 그러면서 “삶이란 존엄한 건지 치사한 건지 이 나이에 이르러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시종일관 ‘못 가본 길에 대한 미련이 노망인지, 집념인지’를 탄식하지만 그 길이 지금껏 그가 지나온 길에 감히 비할 바가 못 되리라는 걸 우리는 안다. 
euanoh@ieve.kr /osenlif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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