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저녁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고(故) 앙드레 김(본명 김봉남)은 ‘최초’라는 수식어를 늘 달고 다녔던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였다.
경기도 고양군(현재 서울특별시 은평구 편입) 태생인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1962년에 디자이너로 정식 데뷔했다. 같은 해에는 서울 소공동에 ‘살롱 앙드레’를 열어 한국 최초의 남성 패션디자이너가 됐다. 남성 디자이너에 대한 편견 속에서도 개성 있는 디자인으로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었고, 1966년에는 파리에서 패션쇼를 열기도 했다. 이는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의 일이었다.
평생 미혼으로 살았던 그는 1982년 생후 5개월 된 남자아이를 입양했고, 누구보다 훌륭하게 키워냈다. 그의 아들은 ‘앙드레김 아뜨리에’의 한 디자이너와 결혼해 세 명의 아이를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가 유명세를 타게 된 건 당대 최고의 영화배우였던 엄앵란의 옷을 만들면서부터다. 엄앵란의 전속 디자이너가 되면서 다른 연예인들과도 특별한 인연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1980년에는 미스유니버스 대회의 주디자이너로 뽑혔고,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선수복을 디자인하는 영광을 안았다.
앙드레김의 디자인은 여성 패션에만 머물지 않았다.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오던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건 냉장고, 침구. 속옷 등 일생생활에서 쓰이는 다양한 제품들을 출시해 또 다른 미적 감각을 자랑했다.
앙드레 김은 상복이 많은 디자이너였다. 1997년 문화훈장 화관장을 추서 받았고, 2000년 프랑스 예술문학훈장을 받은 데 이어 2008년에는 문화훈장 보관장으로 훈위가 승급됐다. 이 외에도 크고 작은 상들을 수상하며 한국 대표 디자이너로서의 위엄을 과시해왔다.
그런가 하면 개그 소재가 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특유의 한국어-영어 혼용체와 말투 등으로 그를 따라하는 성대모사가 인기를 끌었고, 공식석상에서 언제나 비슷한 디자인의 화이트 의상을 입고 나와 “같은 옷만 입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의 화려한 인생은 안타깝게도 대장암 합병증으로 인해 막을 내렸다. 앙드레김은 12일 오후 7시 40분경 서울대 병원에서 향년 75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그의 별세 소식에 연예계는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도 슬퍼하고 있다.
rosecut@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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