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신검' 사태, 개선책이 나와야 한다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0.08.14 08: 21

수년 전 '술은 마셨으나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라는 한 연예인의 변명이 생각났다. 자기 선수도 아닌 드래프트 대상자에게 사전 신체 검사를 실시한 LG 트윈스의 입장표명은 그래서 더욱 씁쓸했다.
 
LG는 지난 13일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이 유력한 고교 무대 세 투수에게 메디컬테스트를 요청, 반대 의사를 표한 한 투수를 제외한 두 유망주를 대상으로 신체검사를 실시했다. 지난해에도 LG는 1라운드 지명자를 상대로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친 것으로 알려져 더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일이 커지자 LG는 "아마야구와 프로야구간의 질서를 어지럽힐 의도는 전혀 없었으며 지명 대상 선수의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고자 하는 실무진의 판단 하에 실시한 것이었다"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그동안 서울 지역의 최대어를 1차 지명자로 입단시킨 동시에 최근 성적이 좋지 않아 2차지명 상위픽의 혜택까지 누렸으나 1997년 이병규 이후 신인왕을 배출하지 못했던 LG였던 만큼 선처해달라는 조의 글이었다.
 
그러나 구단과 계약은 커녕 지명행사도 치르지 않은 유망주의 '사전 신체검사'가 잘못된 일임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특히 이번에 노출된 사실 이외에도 신인 지명과 관련해 절대 행해져서는 안될 행위들이 너무도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사태는 결코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보내서는 안된다.
 
지난 2007년 3월 한 수도권 구단의 스카우트진은 당시 고교 2학년 시절 이미 팀 에이스로 떠오른 투수에게 은밀한 제안을 건넸다. 이미 사이드암으로 최고 148km의 공을 던지던 유망주에게 '팔을 올려서 던져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결과가 잘 나오면 당연히 높은 순위로 지명해주겠다'라고 이야기한 것. 버젓이 고교 지도자가 있음에도 마치 자기 선수인 것처럼 조언을 던진 것으로 엄밀히 따지면 '월권'임에 틀림없다.
 
결과는 스카우트진의 생각과는 반대로 흘러갔다. 팔을 올리면서 투구 밸런스가 무너졌고 최고 구속은 10km 이상 뚝 떨어졌다. 그 반대의 경우에도 도의적 책임이 있었으나 스카우트진은 그와 함께 발을 빼고 눈을 다른 곳에 돌렸다.
 
결국 고교 3학년 최고 거물로 성장이 기대되었던 유망주는 타 구단의 2차 가장 하위 순번으로 프로 무대를 밟았다. 현재 군 복무 중으로 훗날 기둥투수로의 성장을 꿈꾸고 있는 이 유망주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울분을 감추지 못했고 해당 스카우트진은 이전 신인 계약금 문제와 관련해 불명예 퇴진했다.
 
프로무대의 스타나 야구인이 모교를 찾아 성장 가능성이 높은 후배를 보고 그에게 기술을 가르쳐주는 선의의 목적이라면 이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는 엄연히 '우리 팀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 지시에 따라달라'라는 '탬퍼링'과도 같다. 사전 접촉으로 인해 선수가 희생양이 된 대표적 케이스 중 하나.
 
그 뿐만 아니다. 사전 신체검사 당시 LG는 복수의 정형외과를 지정, 유망주 2명을 따로 구분해 검사를 실시했다. 함께 검사를 받는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유망주의 눈에 안대를 씌운 것이나 다름없는 것. 드래프트로 가뜩이나 긴장해있는 상황에서 유망주가 다른 선수와 함께 동시에 검사를 받는 사실은 모른 채 '이 팀이 날 주목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
 
검사를 마친 유망주가 LG 지명순위를 거쳐 다음 순번에서 지명된다면 당사자는 결코 편한 마음으로 타 구단의 유니폼을 입을 리는 없다. 가장 1차적으로 이 사태에 큰 피해를 입을 쪽은 바로 상대적 하위 순번으로 지명될 유망주이며 만약 이것이 밝혀지지 않았더라면 상흔을 가슴에 안고 동경하던 프로 무대에 풀죽은 모습으로 입단하는 유망주가 더 많아졌을 것이다.
 
좋은 씨앗이 그 내부까지 튼튼하다고 그 싹이 거목으로 자라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고교 시절의 혹사를 이겨내지 못하고 프로에서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나 그 이외의 이유로 명성을 떨치지 못한 채 스러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 선수 본인의 마인드컨트롤 능력이 프로로서 걸맞지 않는 케이스도 볼 수 있다.
 
심지어는 팀 선배의 강압에 못 이겨 스스로 팀에서 이탈하는 경우도 더러 있는 것이 사실. 좋은 신인 지명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선수 본인의 정신력 강화는 물론 미래의 주춧돌이 프로 무대에 걸맞게 자라날 수 있도록 팀에서 더 확실하게 관리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이 일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난다면 문제를 제기한 다른 7개 구단 또한 '밝혀지지만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라며 이 행위를 몰래 자행할 가능성이 농후하며 성장 가능성의 예단으로 인해 신인 수급 시장까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유망주들의 무분별한 해외 진출을 막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장막으로 변해 결국에는 한국 야구 시장의 공멸까지 이끌 수 있는 '독소'다. '사전 신체 검사'가 불러일으킨 문제를 그저 흘려보내서는 안되는 이유다.
 
더불어 선수들의 '먹튀'를 방지하기 위한 한국야구위원회(KBO) 차원의 대책이 요구된다. 드래프트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한 전체 신체검사 등으로 수억대의 몸값을 받고 바로 수술대에 오르는 이른바 '먹튀'의 방지책도 필요한 시점이다.
 
farinell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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