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고의 '일본킬러' 구대성(41)이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한화는 15일 보도자료를 통해 구대성이 은퇴한다고 발표했다. 국내에서는 '대성불패'로 불렸다. 일본과 미국에서 활약했던 5시즌을 제외한 13시즌 동안 통산 568경기에서 67승 71패 214세이브를 거뒀다. 세이브는 LG 김용수(126승 227세이브)에 이은 역대 2위. 그러면서도 평균자책점은 2.85에 불과했다.
이와 함께 국제 무대에서는 '일본킬러'로 더 명성이 높았다. 대전고를 졸업한 구대성은 한양대에 입학한 후 1년 선배인 정민태와 함께 '좌대성 우민태'로 불리며 국가대표팀의 든든한 마운드 축을 형성했다.

1993년 빙그레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입단한 구대성은 프로선수가 출전이 허용된 1998년 이후 다시 국제 무대에 나왔다. 1999년 서울아시아선수권에 이어 2000년 시드니올림픽, 2006년 제 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까지 출전한 구대성은 그 때마다 일본 타선을 확실하게 장악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예선에서 1회 위기에 빠진 정민태를 구원했다. 6이닝 동안 6피안타 2사사구 3실점 했으나 한국이 연장 10회 극적으로 승리하는데 디딤돌이 됐다. 또 3, 4위전에서 다시 만난 일본을 5피안타 3볼넷 1실점으로 9이닝 완투승으로 눌러 동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당시 일본 타자 11명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괴력을 발휘했다.
구대성의 '일본킬러' 명성은 2006년 WBC 아시아 예선에서도 여전했다. 첫 경기였던 아시아라운드에서 1-2로 뒤지던 7회 무사 1루에서 등판, 2이닝 동안 2탈삼진으로 6명의 타자를 모두 범타로 돌려세웠다. 결국 한국은 이승엽의 투런포로 승리했고 구대성은 승리투수가 됐다.

당시 구대성은 일본전 뿐 아니라 대만전, 멕시코전, 미국전 등에서도 호투를 펼쳐보였다.
구대성의 극일 선봉장으로서의 활약은 독특한 투구폼에서 비롯됐다. 거의 2루 베이스쪽을 보고 서서 던지는 구대성은 상대 타자들이 구대성의 볼을 볼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공을 놓는 릴리스포인트가 워낙 짧아 타자들로서는 타이밍을 맞추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당연히 그립조차 볼 수가 없어 눈썰미가 대단하다고 알려진 일본 타자들도 구질 파악이 힘들다는 것이다. 이는 좌타자에게 더욱 공략이 힘들게 만들었다.
'일본킬러' 명성은 결국 구대성을 일본에서 뛰게 만들었다. 구대성은 오릭스와 계약을 맺고 이듬해인 2001년부터 2004년까지 4시즌 동안 활약했다. 성적은 24승 34패 3.86의 평균자책점이었다. 2005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메츠에서 33경기를 뛰면서 승패없이 3.91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이제 더 이상 '일본킬러' 구대성은 볼 수 없다. 그러나 류현진, 김광현, 봉중근 같은 젊은 좌완 투수들이 킬러 계보를 꾸준히 이어가 구대성의 향기를 한 없이 느낄 수 있을 전망이다.
letmeout@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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