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문학구장. 롯데 자이언츠-SK 와이번스전 개시 한 시간 전 양팀 선발 라인업에 전광판에 새겨졌다. 타선 중심의 한 축 홍성흔이 손등 골절상으로 전열 이탈한 상황에서 익숙한 이름 구도를 볼 수 있었다.
3번 조성환(34)-4번 이대호(28)-5번 강민호-6번 카림 가르시아. 강민호와 가르시아의 위치가 더러 바뀌었을 뿐 제리 로이스터 감독 재임 첫 해인 2008년 롯데가 8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을 당시 3~6번 타순이었다.

로이스터 감독에게 이와 관련해 묻자 그는 "27경기가 남은 상황이다. 4위 자리를 놓고 추격 중인 KIA가 앞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만큼 우리도 최고의 야구를 펼쳐야 한다"라고 밝혔다. 현 상황에서 최대한 파괴력을 내뿜는 라인업을 내세워야 한다는 뜻.
2년 전으로 돌아간 로이스터 감독의 '클린업 회귀 라인업' 전략은 5-0 완봉승으로 성공을 거뒀다. 신고선수 출신 선발 김수완의 깔끔한 완봉 쾌투도 있었으나 5회 쐐기 투런과 솔로포로 연속 타자 아치를 쏘아올린 조성환과 이대호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올 시즌 3할4푼1리(3위, 17일 현재) 7홈런 43타점 7도루를 기록 중인 조성환은 '로이스터호'의 원래 3번 타자였다. 2008시즌 123경기에 출장해 3할2푼7리 10홈런 81타점을 기록하며 병역 공백을 무색케 하는 위력을 물씬 풍겼던 조성환. 올 시즌 롯데 중심타선을 일컫는 단어는 '홍대갈'이었으나 이는 원래 지난 시즌 '조대홍갈'로 이어진 네 글자 단어였다.
지난 6월 1일 LG전을 끝으로 3번 타순을 홍성흔에게 맡기고 주로 2번 타자로 출장했던 조성환은 컨택 능력을 자랑하며 16일까지 64홈런 224타점을 합작한 홍성흔-이대호 듀오의 타점 루트를 뚫었다. 그러나 15일 광주 KIA전에서 홍성흔이 윤석민의 몸에 맞는 볼로 왼손등이 골절되는 위기가 찾아왔고 그 빈 자리는 타순 하향 조정을 통해 조성환이 꿰찼다.
"타점 양산 능력을 갖춘 조성환이 3번 타순을 맡는 것이 우리 팀에는 이상적이다". 홍성흔이 두산에서 이적해오기 전인 2008시즌 로이스터 감독은 조성환에 대한 믿음을 이렇게 표현했고 조성환은 5회 김광현으로부터 뽑아낸 좌월 쐐기 투런을 포함, 4타수 2안타 2타점을 올리며 승리에 공헌했다.
경기 후 조성환은 "홈런을 의식하지 않았다. 그저 상대 실투를 공략했을 뿐이다"라며 "내 앞에 펼쳐진 찬스가 좋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아웃되더라도 (이)대호가 뒤를 받치고 있었기에 부담없이 휘두른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라며 겸손하게 답했다. 자신의 클러치 능력을 발휘했다기보다 뒤에 버틴 좋은 동료 덕택에 편한 타격을 할 수 있었다는 주장의 답변이었다.
3할6푼5리(1위) 39홈런(1위) 112타점(2위)로 도루를 제외한 공격 전 부문에서 1,2위에 올라있는 이대호의 파괴력도 빼놓을 수 없었다. 조성환의 홈런으로 분위기가 상승한 상황에서 이대호는 김광현의 슬라이더를 놓치지 않고 좌월 솔로포로 20경기 연속안타와 25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이어갔다.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은 9경기에서 멈춰섰지만 한 경기 걸러 또다시 홈런을 작렬한 것도 의미가 크다. 대개 선수들은 물론 팀 또한 연패나 무안타 등 불명예 기록을 제외한 연속성에 있어 기록이 끝나면 후유증을 겪게 마련. 지난 15일 광주 KIA전 무홈런으로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을 9에서 마침표를 찍은 이대호였던 데다 홍성흔의 이탈로 집중 견제가 예상되어 페이스 저하가 예상되었던 경기였다.
그러나 이대호는 이에 아랑곳 없이 홈런포를 재가동했다. 이미 자신의 커리어 하이 홈런 기록을 이어가는 중인 이대호는 홈런 하나만 더 추가하면 생애 첫 한 시즌 40홈런 고지를 밟는다. 이대호가 40홈런을 터뜨린다면 2003년 이승엽(요미우리, 당시 삼성 56홈런)과 심정수(은퇴, 당시 현대 53홈런)에 이어 7년 만에 탄생하는 40홈런 타자.
산술적으로 시즌 종료 시 49개(48.75) 가량의 홈런이 가능하며 페이스 상승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50홈런 고지 등정도 꿈이 아니다. 이대호의 한 방은 단순한 팀 차원만이 아닌 리그의 '진짜 거포 재림' 가능성까지 높였다.
이대호는 경기 후 "내가 때려낸 홈런보다는 선발 김수완이 어린 나이에도 힘든 순간을 잘 넘기면서 승리를 따낸 것을 높게 생각한다. (홍)성흔이 형의 부상에도 선수들이 잘 단합한 것이 승리로 이어진 것 같다"라며 "시즌 40홈런은 의식하지 않는다. 오로지 팀의 4강 싸움을 위해 노력하겠다"라는 말로 주포로서 책임감을 앞세웠다.
주장은 중심타자의 존재감에 화색을 감추지 못했고 중심타자는 팀의 4강 경쟁에 신경을 곤두세우겠다는 뜻을 비췄다. 팀 전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홍성흔의 부상에도 "남은 경기에서 최고의 야구를 펼치겠다"라는 각오를 밝힌 로이스터 감독의 시선은 조성환-이대호 듀오를 향해있다.
farinell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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