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꾸준함'이라는 말이 있다. 한번 잘하는 것은 대다수가 가능하지만 지속적으로 잘 하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야구에서 선발투수는 한 시즌 내내 5∼7일 간격으로 30여차례 등판한다. 한두 경기에서 잘 던져 승리투수가 되는 이들은 많다. 그러나 자신의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고 던지는 이들은 많지 않다. 각 팀마다 한두 명에 불과하다.
선발 투수는 그만큼 힘들고 중요한 위치이기에 보통 각 구단 감독들은 "승리를 거두는 것도 좋지만 선발 로테이션만 거르지 않고 꾸준하게 1년을 소화할 수 있는 투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화 이글스 '괴물독수리' 류현진(23)은 선발 등판을 넘어서 29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 이하) 기록을 달성하며 전무후무한 비공인 세계신기록까지 수립했다.
류현진은 17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전에 선발 등판해 9이닝 동안 121개를 던지며 7피안타 1사사구 8탈삼진 2실점(2자책)을 기록했다. 류현진은 올 시즌 선발 등판한 23경기 모두 퀼리티 스타트를 달성했을 뿐 아니라 지난 시즌부터 총 29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를 이어갔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지난 2005년 5월 13일 9월 9일까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우완 선발 투수인 크리스 카펜터가 22경기 연속 퀼리티 스타트를 기록했다. 1968년에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밥 깁슨도 22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 기록을 달성했다.
류현진 역시 오늘 대기록 달성에 대해 은근히 부담감과 동시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경기 후 류현진은 "시즌 초 퀄리트 스타트에 대해서 별로 생각하지 않았는데 중반부터 투수로서 가장 중요한 기록이라고 깨닫게 됐다"며 "목표는 전경기 퀄리티 스타트"라고 각오를 다졌다. 그러면서 그는 "시즌 초 넥센과 더불어 솔직히 오늘 경기가 고비였다"고 조심스럽게 되짚었다.
실제로 류현진은 17일 LG전에서 3가지 고비를 만났다. 그러나 류현진 특유의 묵묵함으로, 자신감으로, 그리고 영리함으로 LG전을 가볍게 넘어서며 대기록 행진을 이어갔다.

▲경기 전-'배터리'신경현 대신 이희근
류현진은 올 시즌 처음으로 포수가 바뀌었다. 그는 승리투수가 된 후 항상 "신경현 선배의 사인대로 던진 것 뿐"이라며 배터리와 호흡에 큰 믿음을 나타냈다. 그러나 선발 포수가 신경현(35)이 아닌 이희근(25)이었다. 신경현이 부상으로 선발 출장이 힘들었다. 경기 전 한대화 감독도 "오늘 신경현이 몸이 안 좋아서 선발 마스크를 못 쓴다"며 "이게 마음에 조금 걸린다"며 류현진의 퀄리티 스타트에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류현진도 자신의 능력만큼 중요한 것이 포수와 호흡임을 잘 알고 있었다. 포수와 호흡을 단 시간에 맞추기 어렵다. 하지만 류현진은 "(이)희근이형과 머리를 굴려 잘 했는데 내가 실투를 던져 2실점을 했다"며 오히려 이희근에게 미안한 마음을 나타냈다. 호흡에도 큰 문제가 없었다. 7회부터는 신경현이 마스크를 써 3이닝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자칫 흔들릴 수도 있었지만 포수까지 배려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당일 컨디션-"오늘이 위기였다"
경기 후 류현진은 "오늘이 퀄리티 스타트 기록을 이어가는데 위기였다"고 말했다. 류현진 본인은 "컨디션이 좋았다"고 말했지만 경기 초반 직구 스피드는 다른 날에 비해 많이 낮았다. 140km 초반대를 찍었다. 대신 잘 던지지 않았던 슬라이더의 감이 좋았다. 류현진은 "슬라이더가 잘 들어갔다. 스피드도 다른 날에 비해 많이 나서 슬라이더 비율을 높인 것을 잘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힘을 비축한 류현진은 7회부터 불같은 강속구로 타자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최대 승부처였던 7회말 1사 1,2루 위기 순간에는 박용근을 상대로 볼카운트 2-0에서 3구째 몸쪽에 꽉 찬 148km 직구를 뿌려 스탠딩 삼진을 솎아냈다. 후속타자 김준호를 상대로는 봁카운트 2-2에서 147km 바깥쪽 높은 직구로 헛스윙 삼진 처리했다.
8회말 1사 3루에서는 이택근을 유격수 라인드라이브로 처리한 데 이어 조인성을 좌익수 플라이로 처리하며 추가 실점을 하지 않았다. 9회말에는 2사 후 '큰' 이병규를 상대로 볼카운트 2-1에서 4구째 149km 직구를 던져 스탠딩 삼진을 잡아냈다. '괴물'투수를 증명한 강속구였다. 특유의 능구렁이 같은 피칭이 통했다.

▲LG 타자들의 노림수를 극복했다
류현진의 호투가 마냥 반갑지 않은 이들도 있다. 바로 상대팀 타격 코치다. 특히 LG는 류현진에게 약한 팀으로 공인 찍혔기에 경기 전 LG 서용빈 타격 코치는 분주했다.
류현진을 깰 비책을 묻자 서 코치는 "경기 전 선수들과 미팅에서 구종 1개만 노리고 타석에 들어가서 치라고 주문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박용택의 솔로 홈런과 박용근의 적시타가 터지며 안타를 7개나 뽑아냈다. 그러나 '괴물' 류현진으로부터 연속 안타를 뽑아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류현진은 LG의 한 가지 노림수까지도 극복하며 위대한 29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 행진을 이어갔다.
agass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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