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삭은 고향 냄새 고스란히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0.08.18 18: 55

속초 아바이‧증도 염전마을 등 26곳
2년간 발품 팔아 취재한 체험여행서
대한민국 마을여행

이병학|312쪽|컬처그라퍼 
 
[이브닝신문/OSEN=오현주 기자] “그 많던 나무 다 비제끼고 산 파제끼고, 마을을 홀 뒤집어 놓았대니까요.” 정선 고한읍 만항재 바로 밑에 만항마을이 있다. 탄광이 들어서기 전까지 만항은 화전민 몇집만 살던 곳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탄광이 처음 개발된 이래 6·25전쟁 뒤엔 ‘쫄닥구데이’라 불리는 소규모 민간 개발업자들이 몰려들며 인구가 늘었다.
우리말로 ‘늦은목이재’란 이름을 가진 만항재는 강원 정선군 고한과 영월군 상동을 잇는 고개다. 해발 1330미터, 국내서 가장 고도가 높은 포장도로 고갯길이다. 탄광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까지 만항마을은 “나무가 하늘도 안 뵈킬 정도”로 우거져 있었다. 60~70년대 번성한 탄광산업과 함께 급팽창했던 마을은 80년대 이후 사양길에 들어선 탄광산업과 함께 급쇠락했다.
우리 삶의 터전 마을이야기를 담았다. 여행기자가 2년간 전국의 마을을 찾아다니며 취재한 대한민국 마을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은 체험여행서다. 날카로운 눈썰미로 강원·충청·전라·경상도의 정겨운 마을을 돌며 발품 팔아 얻어낸 정겨운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강원 속초 아바이마을, 충남 서천 앵두마을, 전북 완주 물고기마을, 전남 여수 돌삿갓마을, 경북 청도 고택마을 등 26개 마을들이 스케치됐다.
요즘 여행은 소비를 넘어서는 관계다. 그 공간에 몸을 들여놓는 순간 여행자는 소비자가 아니라 체험자가 된다. 책은 그 실현을 옹골지게 해내고 있다. 느리고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과 누추함에서 기쁨을 찾는다.
전남 신안군 증도 염전마을은 가장 더디고 편치 않은 장소 중 하나로 추천됐다. “나룻배 타고 사옥도, 지도 거쳐 여섯시간 걸려서 무안 해제로 들어갔제. 진번나루서 일단 배를 타믄 세 번을 걷고 배 타고 또 걷고 배타고 해야 무안해제로 갔지라.” 증도의 마지막 뱃사공은 이렇게 회고하지만 지금 무안에서 증도까진 놓인 다리 덕에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다. 불편한 세월을 견뎌온 주민들의 애환과 문명의 이기가 서로 절충점을 모색하는 노력들을 잡아냈다.
개발의 잣대로 무너져가는 마을 풍경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낸다. 전남 보성 강골마을은 400년 전 광주 이씨가 들어와 살며 집성촌을 이룬 곳이다. 독특한 건축미를 자랑하는 옛 집들과 돌담길, 대숲과 정자 등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이 마을이 한순간에 뒤숭숭해졌다. 전통마을 관광지 조성사업계획이 나왔기 때문이다. 마을 어르신들은 오히려 수백억원 퍼부어 관광지를 만들 것이 아니라 ‘슬로시티’ 개념이 그 바탕을 이뤄야한다고 주장하신다.
도시화로 해체되는 시골마을을 지켜보는 주민들에 대한 애정이 전국의 ‘골짜기 마을, 비탈마을, 트인 강물’을 들여다보게 된 계기라고 했다. 곰삭은 고향의 맛과 그 내력이 눈에 밟히는 아주 불편한 여행기다.  
euanoh@ieve.kr /osenlif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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