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이 좋다". 경기를 앞두고 내린 폭우에 박경훈 감독이 슬쩍 미소를 지으면서 꺼낸 말이다. 비가 자주 내리는 제주도가 홈인 박경훈 감독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고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18일 저녁 7시 30분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0 하나은행 FA컵 8강전 성남 일화와 원정 경기(제주 2-0)는 박경훈 감독의 발언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제주는 특유의 '삼다축구'(돌처럼 응집력 있고 바람처럼 빠르며 여자처럼 아름다운 축구)를 살리지는 못했지만 이기는 축구의 정석을 보여줬다. 잔디 상태가 형편없었지만 한 번의 역습으로 전개되는 날카로운 반격으로 성남의 기세를 잠재웠다. 전반 20분 김은중의 선제골로 기선을 제압하더니 종료 직전 다시 김은중이 한 골을 추가하면서 왜 제주가 올 시즌 상위권을 점령하고 있는지 증명했다.

박경훈 감독은 제주가 비오는 날에 강한 이유가 단지 환경 탓은 아니라고 강변한다. 평소 제주가 추구하는 축구가 빠른 축구이기에 강하다는 뜻이다. 박경훈 감독은 "우리는 패스의 비중이 다른 팀보다 높다"면서 "비가 내리면 아무래도 공이 빨라진다. 비오지 않는 날에도 물을 뿌리고 축구를 하니 잘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박경훈 감독은 다른 팀도 제주와 같은 환경에서 축구를 한다면 K리그가 더욱 재미있을 것이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박경훈 감독은 "우리는 K리그가 더욱 재밌어지도록 만들 의무가 있다. 독일과 영국은 잔디에 열선까지 까는데 철저한 잔디 관리와 경기장에 물을 뿌려 경기를 빠르게 만드는 노력은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되물은 뒤 "지도자 협의회에서도 경기 1시간 반 전까지 물을 뿌리자고 말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성남의 신태용 감독도 제주의 이런 변화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과거 제주만 만나면 '1승의 제물'로 생각해왔지만 올해는 '끈끈한 축구'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것. 신태용 감독은 "역시 감독이 바뀌면 팀컬러도 바뀌는 법"이라고 말했다.
stylelomo@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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