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병헌이 잔인하게 살인을 저지르는 사이코패스보다 더 지독한 악마로 돌아왔다. 약혼녀가 연쇄살인범에게 사지가 절단돼 죽음에 이르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된 이후 그보다 더한 고통을 주며 연쇄살인범을 쫓는다. 짐승을 쫓듯이 추격해서 지독한 고통을 주고 풀어주고 다시 고통을 주기를 반복한다. 차라리 빨리 죽여달라는 연쇄살인범이다(최민식 분).
최근 들어 이병헌은 해외 진출 작품 두 편을 선보였다. 영화 ‘나는 비와함께 간다’ ‘지.아이.조’ 두 편이다. 한 편은 작품성으로 다른 한편은 철저히 상업영화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 냈다.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도 성공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
또한 지난해 이병헌은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국정원요원으로 출연해 뛰어난 액션감은 물론 김태희와의 멜로 라인도 유연하게 소화하며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이 드라마는 40%에 이르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올 여름에는 김지운 감독 그리고 최민식과 영화 ‘악마를 보았다’로 돌아왔다. 이병헌은 많은 대사를 하지 않지만 복수를 결단할 수 밖에 없는 처참한 심정, 인간이라고는 할 수 없는 연쇄살인범의 태도에 대한 견딜 수 없는 분노, 복수를 감행하는 과정에서 피폐함, 복수를 끝낸 이후에 남는 허무와 슬픔 등의 감정선을 극의 초반부터 막판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살려나간다. 제한상영가 논란과 영화의 잔혹성의 유무를 떠나 이병헌의 연기 하나만 보는데도 영화표 값이 아깝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점점 연륜을 쌓아가는 이병헌. 그의 연기 인생의 최정점을 달리고 있다는 말도 많이 나온다. 이병헌은 “이곳은 굉장히 냉정한 곳이다. 언제 (작품이)끊어질 수도 있다. 내려가는 길에 대해서도 마음의 준비는 많이 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모든 시나리오들이 나한테 와. 난 항상 선택하는 입장이야 그런 상황을 아무 생각 없이 즐기기 만할 나이는 분명히 아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게 언제까지 갈까. 큰 소원이 있다면 내가 선택하는 입장에서 오래갔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고 덧붙였다.
이병헌은 전 여자친구와의 법적인 문제로 8개월간 송사에 휘말렸었다. 배우로서의 그의 행보에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지만 사적인 부분에서 힘든 시간을 거쳤다.
“많은 사람들은 고통을 짊어지고 산다. 어떤 사람은 많이 힘들고 어떤 사람은 비교적 작은 고통을 모두 안고 산다. 하지만 모두가 힘들다고 떠들고 산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시끄러워지겠는가. 투정부리고 싶지 않다. 온전히 자기 몫이다”라고 말을 아꼈다.
이병헌은 전세계에 와이드 릴리즈 되는 액션 영화 ‘지.아이.조’의 두 번째 시리즈를 촬영하러 곧 미국으로 떠난다. 1편에서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 팬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 내 2편에서 더욱 그 비중이 커질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번 연말에 촬영을 하러 떠나는 것이었는데, 시나리오 작업 때문에 내년 초여름으로 밀렸다. 비중에 대해서 말이 벌써부터 많이 나오는데 그 모든 부분을 열어 두고 싶다. 단역도 될 수 있고 주인공도 될 수 있지만 욕심을 버리고 있다. 다만 ‘지.아이.조1’을 본 미국 관객들의 반응은 거의 우리나라 꽃미남과 같은 반응이었다. 어떤 사람들한테는 그렇게 비춰질 수 있는 게 신기하기는 했다”고 전했다.

영화 ‘지.아이.조’ 시리즈 외에 다른 해외 작품을 검토 중에 있는지 궁금했다. “가끔 들어온다. 하지만 작품 선택이 점점 더 신중하게 되는 것 같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보기 때문에 신중하게 된다. 우리나라 관객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게 사실 선택을 할 때 더 신중해지는 측면이 없지 않아 있다. 의식 안하고 싶은데 의식이 된다. ‘과연 다음에 행보가 뭘까’하는 관심이 있으실텐데 내가 이상한 걸 하면 좀 그렇다. 물론 의식당하고 싶지는 않다. ‘지.아이.조’는 그런 모든 것들을 의식하지 말자라는 마음의 결정을 하고 선택을 한 작품이다.”
1991년 KBS 14기 공채 탤런트로 연기자로 길을 걷기 시작한 이후, 이병헌은 연기자로 치열하고 성실하게 날들을 채워나갔다. 앞으로 배우로서도 어떤 설계를 하고 있을까.
“계획을 막 세우는 타입은 아니다. 다만 뭘 하게 되든 내가 이일을 하 든 이일을 하지 않 든 행복감을 잃지는 말자고 생각한다. 내가 굳이 행복하지 않는 상황에서 끝까지 이일을 붙잡고 있지는 말자는 생각을 한다. 업적으로나 명성이나 배우로서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다른 한편 한 단계 한 단계 천천히 올라가게 길 중에서 선택을 해야할 때, 내가 행복감을 못 느낄 것 같으면 난 전자를 포기할 것 같다”고 배우의 일을 하면서도 스스로의 행복감을 지켜가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 영화 ‘악마를 보았다’를 본 관객들의 평가가 극단으로 엇갈리고 있다. 영화 흥행은 그 논란과 비례할 것 같은지.
흥행에 대해서 기대는 없다. 흥행 되면 되게 기분이 좋은데 일단 논란의 영화가 됐다는 것에서 일한 의미가 충분한 것 같다. 쉽게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고 쉽게 잊히는 영화가 있는 반면, 화제의 중심에 서고 찬반이 나뉘고 이야기를 오래할 수 있는 주제가 된다는 것은 나름 의미가 있는 것 같다.

- 두 차례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다. 마지막에는 19금으로 극장에 상영하게 됐지만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을 때는 심정이 어땠는지.
제한상영가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만우절인줄 알았다(웃음). 왜냐하면 나도 못 본 상태였고 더빙할 때 살짝살짝 본 것이어서 영화를 못 봤는데 나는 그 작업을 같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한상영가 판정이 믿겨지지 않았다. 관객들도 나도 시사회에서 재미있게 보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딱 그런 이야기가 나오니까 놀랐다. 외부에서는 노이즈 마케팅 제대로 한다고까지 했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노이즈 마케팅이라면 언론 시사회까지 취소할 것은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심각한 사태구나’라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당시 저는 많이 심각하기 보다는 영화가 더 궁금했다. 대체 어떻게 찍었고 어떻게 편집을 했길래 이렇게 까지 되나 싶었다. 더 많이 영화가 궁금했다.
- 시사회에서 처음 영화를 봤을 때 느낌은
기자들도 영화를 보고 나서 ‘머리가 띵하다’고 했는데 저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영화 시사회 이후에 민식이 형이랑 김지운 감독님, 그리고 저 아무도 말이 없었다. 물론 감독님이야 후반 작업을 하면서 몇 십번씩 봤으니까 우리의 말을 기다리고 있어서 침묵을 지키고 있을지 몰라도 민식 형하고 나하고 아무 말도 안했다. “담배 하나만 줘봐”라는 말 정도만 했다.
- 영화를 본 관객들이 표현 수위가 잔혹하다는 이야기가 많다. 그 부분에 공감을 하는지.
표현의 수위 역시 감독님의 몫이다. 내가 영화를 보고 느낀 것은, 이 영화는 굉장히 여러 가지 문지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객들한테 여러 가지를 생각을 하게 한다. 왜 저렇게 표현의 수위를 강하게 하고 복수하는 과정을 디테일하게 표현해서 사람들에게 잔혹성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게 만들었을까 질문을 하면, 한 남자가 사랑하는 약혼녀를 연쇄살인범에게 정말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를 당했을 때 이 남자가 연쇄살인범을 복수를 위해 죽였다고 하면 보통은 ‘잘했다’ ‘아주 시원하다’ ‘통쾌하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니 관객이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 같다. 그 복수가 맞는 것인지 아닌지 다시 고민을 하게 한다. 나중에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하게 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말로만 하는 것과 그걸 보여주는 것의 차이는 굉장히 다른 것이라는 것을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 같다. 폭력성과 잔인성에 대한 논란을 그렇게 생각했다.
crystal@osen.co.kr
<사진> 지형준 기자 jrnews@osen.co.kr
화보로 보는 뉴스,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OSEN 포토뉴스’ ☞ 앱 다운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