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악당 연기는 배우에게도 상흔을 남긴다.
요새 배우 최민식은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친절한 금자씨’'이후 5년만에 한 영화 '악마를 보았다'에서 '살 떨리는' 연쇄살인마 연기로 잔인함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최민식은 더 이상 검증이 필요없는 그 연기력 만큼이나 실감나는 연쇄살인마를 소화해 내 보는 이를 경악케 한다. 극중 이유 없이 사람(특히 여자)들을 죽이는 것에서 존재의 기쁨을 느끼는 연쇄살인범 경철 역을 맡은 최민식은 잔인하고 살벌하고 무섭다. 양심이란 개념이 아예 없는 악마 자체라는 사실이 더욱 폭력성을 극대화시킨다.


많은 관객들이 최민식의 연기에 대해 극찬하면서도 아직까지는 배우 최민식과 캐릭터 장경철을 뚜렷히 구분하지 못한 것에서 오는, 최민식에 대한 서늘한 공포감을 간직하고 있다.
본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친절한 금자씨;에 이어 더 잔혹한 살인범이 된 최민식은 남아있는 장경철의 잔상을 씻어내고자 노력 중이다. 연쇄살인범 역할을 다시 맡을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손 사레를 치며 “살인의 ‘살’자도 다시 안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차기작도 블랙코미디 장르이다. 유쾌하고 재미있는 영화가 될 것 같다. 이제 이런 잔혹한 영화는 다시 못할 것 같다. 심리적으로 너무 힘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장경철이란 역에 몰입하면서 힘들었던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동네 사우나에 가고 그러면 얼굴이 낯이 익어서 친근함의 표시로 어르신들이 툭 치기도 하고 그런다. 그때는 '아 네' 그러고 웃고 넘어간다. 근데 이번에 영화 촬영 하기 전에 엘리베이터를 타니까 웬 아저씨가 친근감의 표시를 하면서 '어디 최씨야?' '전주 최가에요'라고 대답을 했는데 그 순간 '이 새끼가 왜 반말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나 자신에게 섬뜩함을 느꼈다. 크랭크인 하기 전이었는데 그 순간 딱 보니까 엘리베이터 안에 CCTV가 있었다. 뭐 하나 빠지면 심하게 빠지는 스타일인데 이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영화 촬영에서 연쇄살인범이 돼는 과정을 테크니컬하게 소화하려고 했다. 정말 몰입해버리면 난리가 날 것 같았다".
전대 미문의 악역을 연기한 배우 이성재 역시 고통을 토로한 바 있다.
이성재는 얼마 전 OSEN과의 인터뷰에서 영화 '공공의 적' 이상의 악역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지난 2002년 개봉한 영화 '공공의 적'에서 돈과 권력을 지닌 악독한 범인 펀드매니저 조규환 역을 맡아 소름끼치게 연기해 화제를 모았다. 폐륜을 저지르는 살인마로 아직도 한국 영화사에서 최고의 악역으로 손꼽히고 있다.
때로는 부드럽고 진지하게, 때로는 코믹한 모습으로 관객들과 시청자들을 만났던 이성재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공의 적' 속 이성재의 모습을 많이 기억한다고 말하자 그는 "'공공의 적'은 영화도 좋고, 평소 악인을 해보고 싶었던 참에 맡게 된 역이었다. 하지만 당시 모방범죄 논란도 있었고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라고 털어놨다.
'공공의 적'에 등장한 것과 비슷한 엽기적인 범죄가 발생하자 언론은 영화 모방 범죄라 꼬집었고, 그것이 진실이든 부풀려진 것이든, 캐릭터를 연기한 이성재에게는 하나의 상처가 됐다.
이성재는 "당시 나는 나만 좋으면 어때, 라는 마음으로 연기하는 스타일이었는데 나이가 드니 그런 부분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더라. 주위 여러 상황을 돌아보게 된다"라고 조금은 바뀐 자신의 연기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배우관이나 장르를 불문하고 도전하는 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는 대중과 사회를 의식한다는 점이다. 나만 좋으면 무조건 된다는 식은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그래도 훌륭한 '악역'이 있으면 물론 마다하지 않는다. 다만 이성재는 "천륜을 저버린 '공공의 적' 이상의 악독한 놈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앞으로 악역을 한다면 당위성 있는 악행을 저지르는 인물을 하고 싶다고. '묻지마 살인범' 류의 악역은 이제 '사절'이다.
배우는 자신이 연기하는 누구가가 돼야 한다. 하지만 그 누군가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끔찍한 살인마라면 몰입하기는 고통스럽다. 모방 범죄의 위험 여부 논란을 넘어 일정 부분 상흔을 남기는 연쇄 살인마 역에 몰두하는 배우들, 연기자란 직업도 참으로 어렵다.
nyc@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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