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루는 기대할 수 없어요. 다만 컨택 능력과 파괴력을 겸비했다는 점은 여타 아시아 선수들과는 확실한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아시아 선수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진다는 이야기였고 선수는 호쾌한 한 방으로 위력을 뽐냈다. 시카고 컵스의 한국지역 스카우트 애런 타사노가 7년 만의 40홈런 타자가 된 '빅 보이' 이대호(28. 롯데 자이언츠)에 대한 특이한 감상을 이야기하며 혀를 내둘렀다.

한국인과 결혼해 울산에 정착, 컵스의 스카우트 업무를 담당 중인 타사노는 지난 16일 2011 신인지명이 끝난 뒤 이제는 프로 선수들을 주시하는 중. 타사노는 20일 사직구장을 찾아 두산-롯데전을 관람했다.
이대호를 보며 타사노가 뱉은 첫 마디는 "저렇게 클 수가"라는 이야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스즈키 이치로(시애틀)의 성공과 함께 아시아 선수는 거포 스타일보다 준족의 선수가 오히려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념이 거의 뿌리 박혔기 때문. '빅 초이' 최희섭(KIA)이 플로리다-LA 다저스 시절 한 시즌 15개의 홈런을 때려내기도 했으나 확실한 거포로 성장하지는 못하고 결국 국내 무대로 돌아와야 했다.
"우리 팀(컵스)에도 이학주가 있지 않은가. 이학주는 거포 스타일이 아니라 일단 컨택 스윙을 한 뒤 빠르게 질주하는 선수다. 추신수(클리블랜드)도 있고 마쓰이 히데키(LA 에인절스)도 있기는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기억하는 아시아 타자는 선구자가 된 이치로 때문인지 일단 발 빠른 선수를 떠올리지 시시때때 한 방을 호쾌하게 때려내며 홈런 더비 상위에 랭크되는 타자를 떠올리지는 않는다".
올 시즌 국내 무대에서 가장 각광을 받는 타자 중 한 명인 이대호에 대한 감상은 어떨까. 이대호는 3할6푼 40홈런 116타점(20일 현재)로 2001년 데뷔 이래 생애 최고의 한 해를 보내는 중이다. 전무후무한 '타격 7관왕'을 노릴 만큼 이제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최고의 거포로 자리매김했다고 볼 수 있다.

"발 늦어요. 몸 크잖아요. 주루 없어요"라는 서툰 한국말로 웃음을 자아낸 타사노. 그러나 그는 곧바로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면서 정형화되지 않은 이대호의 능력에 주목했다. 앞서 언급한 '아시아 타자의 성공 케이스는 준족'이라는 선입견을 깰 수 있을 만한 타자로 보는 것만은 분명했다.
"몸에 비해 탁월한 유연성을 갖추고 있어 컨택 능력이 좋다. 시즌 40홈런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점(이대호의 40홈런이 나오기 전)은 일단 이 리그에서 거포로 인정받는다는 증거다. 이대호를 보니 떠오르는 선수가 있다. 프린스 필더(밀워키)를 아는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이대호를 보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선수가 필더다"라며 다시 한 번 웃었다. 과거 디트로이트-일본 센트럴리그 한신에서 활약했던 거포 세실 필더의 아들인 프린스 필더는 2007시즌 50홈런 119타점을 기록한 이후 밀워키의 중심 타자로 활약 중이다. 필더는 우둔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위압감을 바탕으로 한 출루 능력도 뛰어난 타자. 컨택 능력을 먼저 언급했으나 타사노가 주목한 것은 이대호의 펀치력이었다.
여타 아시아 출신 메이저리거와는 다른 특성을 지닌 만큼 타사노는 이대호의 향후 가능성에 대해서 최대한 말을 아끼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좋은 타자다. 주루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해도 말이다"라며 신중한 가운데 스카우트로서 이대호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그리고 이대호는 타사노가 지켜보는 가운데 어두운 하늘을 가르며 구장 밖으로 떨어진 하얗고 시원스러운 궤적을 보여주었다. 특별한 타자로 힘을 내뿜은 이대호는 훗날 어느 무대에서 제 위력을 떨칠 것인가.
farinell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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