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손남원의 연예산책] 멜로와 액션, 그리고 드라마를 두루 섭렵할 수 있는 배우를 찾기는 쉽지않다. 눈빛으로만 연기할 수 있는 배우를 만나기란 더 힘들다. 이 둘을 다 갖춘 배우가 바로 이병헌이다.
흥행 가도를 질주중인 김지운 감독의 잔혹 스릴러 '악마를 보았다'에서 악마 캐릭터는 여럿이다.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마 장경철(최민식 분)뿐 아니라 그를 더 악마적으로 상대하는 정의와 복수의 사도 수현(이병헌 분)도 강력한 마성의 중독자로 꼽을 수 있다.
그래서 수현 역은 쉽지 않았다. 강력계 형사 천호진의 대사처럼 "사람 아닌 짐승(최민식)을 상대하는" 수현은 말그대로 '아가X를 찢는 행위'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스트레스를 풀기위한 유흥으로 젊은 여자들을 강간하고 살인하며 인육까지 먹어대는 살인마들에게 그들 이상의 잔인한 수법으로 응징하는 게 영화 속 그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병헌에게 주어진 대사는 많지 않았다. 임신한 약혼녀가 장경철에게 난도질 당해 사지를 찢긴 초반부 이후로 그의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 오직 눈빛으로 얘기하고 온 몸으로 표현해야 할 수현의 내면세계만이 '악마를 보았다' 안에 가득 펼쳐진다.
김지운 감독은 전작 '달콤한 인생'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이병헌과 함께 작업하며 그의 연기와 매력에 푹 빠져든 인물이다. "(김 감독이)보고 싶은데로 영화를 찍었다"는 '악마를 보았다'에 이병헌을 캐스팅하고 원래 최민식이 맡고자 했던 수현역으로 맡긴 믿음은 그 곳에서 출발한다.
이병헌은 김 감독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악마를 보았다'에서 가장 인상깊은 연기는 최민식의 광기가 아니고 이병헌의 서늘함이다. 자신의 모든 걸 비운채 냉정하고 차분하게 그이상 잔인하기 힘들 수준의 잔혹한 복수전에 나서는 국정원 경호요원 수현으로서다. 슬픔과 광기를 모두 물기 살짝 어린 두 눈에 담고서 관객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지금 악마를 보고 있는 거냐?"고.
역시 잔혹 액션극인 원빈의 '아저씨'를 말랑말랑한 영화로 보이기 만들 정도로 세고 강한 '악마를 보았다'가 흥행 쌍끌이에 성공한 비결이 여기에 있다. 등급제한을 받았다가 일부 장면 삭제로 겨우 18금 개봉이 허용된 이 영화에서 이병헌의 농익은 연기를 만나는 기쁨이란 대단하다.
또 누구나 긴 인생을 살면서 한번쯤 품게되는 "죽이고 싶다"는 찰라의 감정을 수현에 감정이입, 적나라하게 스크린에 펼쳐낸 내용이 공감을 사고 있다. 기자 시사회부터 객석에서 '악' 소리 터져나왔던 '악마를 보았다'가 개봉 2주만에 130만명 관객을 거뜬히 돌파한 배경이다.

이병헌은 무대인사에서 "종영 후 무대인사는 배우로서 관객 반응을 직접 체크해 볼 수 있기 때문에 보통은 무척 설레는 자리"라며 "원래는 '영화 재미있게 보셨어요?'라고 물어본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여운이 무척 긴 영화다. 좋은 영화인지 나쁜 영화인지 이 자리에서 결정하지 마시고 이 영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곱씹어볼 수 있는 영화니까, 되돌이켜보면서 생각해 달라"고 했다.
또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은 했으나 이렇게까지 셀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라면서 "하지만 배우로서 이렇게 토론의 거리가 되는 영화가 한 편쯤 필모그래피에 있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지 아이 조' 출연으로 세계적인 상업 스타의 대열에 들어섰음에도 문제작 캐스팅에 선뜻 응하고 연기활동에 계속 박차를 가하는 이병헌이야말로 다른 어떤 수식어보다도 '좋은 배우'라고 묘사해야 되지않을까.
mcgwir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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