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4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전 9회말 조성환의 헬밋 쓴 머리를 맞힌 KIA의 마무리 투수 윤석민(24)이 공황 장애와 우울증 증세로 25일 LG와의 홈경기를 앞두고 병원에 급히 입원을 했다. 26일 전문 병원에서 스트레스 증후군과 우울증 진단을 받은 윤석민은 감독과의 면담을 통해 휴식을 요청했고 결국 1군 엔트리에서 말소돼 사실상 시즌을 마감했다.
KIA의 조범현 감독(50)은 25일 OSEN과의 인터뷰에서 ‘아무래도 어제 사구 때문에 충격을 많이 받은 모양이다. 팀이 어려운 상황인데도 휴식을 취하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오늘은 경기에 나서지 않는다. 컨디션 회복 여부를 더 지켜봐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어 26일 엔트리 말소를 결정한 뒤 “얼굴에 핏기가 없을 정도로 힘이 없었다. 병원도 휴식을 주문하고 본인도 쉬고 싶다고 말해 엔트리에서 제외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필자는 이틀에 걸쳐 당시 상황을 비디오 리플레이를 통해 여러 번 살펴 보았다. 윤석민은 조성환의 머리를 맞힌 직후 곧 바로 모자를 벗고 사과의 인사를 한 것으로 현장에 있던 취재 기자들을 통해 확인됐으나 중계 화면에는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경기 종료 후 한번 더 90도 각도로 허리를 숙여 미안함을 표시한 것만 부각됐다. 실제로 윤석민은 머리를 맞힌 뒤 타석으로 다가가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조성환의 부상 정도를 살폈다. 타자를 맞히고도 무관심한 태도로 경기가 중단되는 시간 동안 자신의 어깨가 식을까 캐치볼을 하는 일부 투수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그후였다. KIA의 이강철 투수 코치가 마운드로 나와 윤석민을 안정시켰으나 윤석민은 이미 정신적으로 극도의 혼란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얼핏 보면 마치 웃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흥분한 일부 관중들의 오물 투척과 야유가 7분간 계속됐다. 윤석민에게 마운드에서 내려가라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소란은 겨우 진정돼 윤석민은 투구를 재개했고 다음 타자 이대호를 볼넷으로 진루시키자 다시 소동이 벌어져 4분간 또 중단됐다. 결국 카림 가르시아를 좌익수 플라이로 잡아 내 경기는 KIA의 승리로 끝났다. 경기 후 다시 윤석민이 고개를 숙여 사직 팬들과 상대 팀에 용서를 구했으나 소동은 KIA가 버스를 타러 가는 과정에서 또 벌어져 동료 김선빈이 다치고 몸싸움까지 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윤석민은 광주로 이동하는 동안 구단 버스 안에서 머리를 푹 숙이고 앉아 말도 안하며 매우 괴로워했다는 것이다. 동료 선후배 누구도 말을 걸 생각조차 못할 분위기였다고 한다.
필자는 비디오 리플레이로 당시 상황을 보면서 안타까움과 함께 너무도 큰 아쉬움으로 가슴을 쳤다. 사려 깊다는 KIA 조범현 감독이 왜 그 순간에 윤석민을 교체해주는 배려를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아웃 카운트 하나가 남겨 두고 있는 상황에 팀의 마무리 투수가 윤석민이라고 해도 그라운드의 가장 높은 곳이라는 마운드에서 2만8000여 명의 사직 관중의 야유를 홀로 온 몸에 받고 있도록 그를 방치해 놓았던 것은 가혹했다. 아무리 프로의 세계가 비정한 승부로 명암이 갈린다고 해도 아직 24세인 윤석민에게는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음이 분명하다.
문득 김병현이 애리조나 시절 월드시리즈에서 결정적인 홈런을 얻어 맞고 마운드에 주저앉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미국 언론에서는 김병현이 정신적 충격으로 선수 생활이 끝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했다. 그런데 김병현은 홈런을 맞은 것이고 윤석민의 경우는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필자는 머리를 맞은 조성환은 물론 윤석민에게도 선수 생명이 걸린 위기가 온 것으로 생각한다. 윤석민이 심리 치료까지 받기로 한 가운데 오죽하면 어머니까지 나서 조성환에게 사과를 했겠는가? 그 만큼 아들 윤석민이 홍성흔의 왼 손등을 맞힌 이후부터 받고 있는 심리적 부담과 충격이 엄청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날 윤석민은 6-5로 역전한 8회 마운드에 올랐는데 오르자마자 약 3분에 걸쳐 야유가 계속됐다. 자신의 사구로 인한 홍성흔의 부상 여파였다. 그런 부담을 안고 있는 상태에서 같은 팀을 상대로 장소만 옮겨 다시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고 이번에는 더 치명적인 머리였으니 윤석민이 제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감독이 즉시 결단을 내려야 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설사 한 경기를 놓치는 한이 있어도 선수를 먼저 보호해야 했던 것 아닌가. 1승에 집착하다가 자칫 한 선수의 야구 인생이 끝날 수 있다.
조성환과 윤석민이 입원하는 사태 속에 롯데와 KIA의 4위 싸움에 대해 전력 차질 등을 지적하는 글들을 많이 읽었다. 그러나 아무리 성적이 중요하다고 해도 야구 역시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이 우선이다. 윤석민의 정신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이번 사건은 그런 문제가 아니다. 아구와 승부의 관점이 아니라 야구 선수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사태의 본질을 볼 수 있다.
조성환과 윤석민의 쾌유를 기원한다.
/보경S&C㈜ 대표, 전 일간스포츠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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