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이 끝난 뒤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4년 계약이 만료되는 이승엽(34)의 향후 거취에 대한 이야기가 적지 않다. 일본내 타 구단 이적부터 미국 무대 도전, 국내 무대 복귀 등 다양한 전망과 의견이 엇갈린다.
2004년 지바 롯데에 입단한 이승엽은 2006년 요미우리로 이적한 뒤 4번 타자를 꿰차고 타율 3할2푼3리 169안타 41홈런 108타점 101득점으로 맹활약을 펼쳤다. 이승엽은 이듬해 왼손 엄지 인대 부상 속에서도 타율 2할7푼4리 148안타 30홈런 74타점 84득점으로 선전했다.
그러나 2008년부터 수술 후유증과 하라 다쓰노리 감독의 조급한 기용 방식 속에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국내 무대를 평정했던 이승엽이기에 팬들의 실망 역시 적지 않았다. 최근 3년간 그가 보여줬던 모습은 만족할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이승엽의 국제 대회 활약도만 놓고 본다면 속된 말로 '평생까임방지권'을 줘도 무방하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획득,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4강 신화 속에 이승엽은 최고의 영웅이었다. 중요한 찬스마다 홈런이나 적시타를 터트리며 승리를 이끌었다. 그가 없었더라면 올림픽 첫 메달 획득과 WBC 4강 신화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획득 속에 이승엽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최종 예선전에서 대표팀의 3번 타자로 활약한 이승엽은 타율 4할7푼8리(23타수 11안타) 2홈런 12타점 5득점으로 8년 만에 올림픽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 그의 활약이 없었더라면 본선 무대 진출 여부는 장담할 수 없었다. 2008년 부진 속에 2군 통보를 받았던 이승엽은 장고 끝에 대표팀 합류를 결정했다.
소속 구단과 조국이라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선 이승엽은 '대한민국'을 선택했다. "본선에서도 함께 뛰자"는 대표팀 후배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 베이징 올림픽에서 천금같은 홈런 2방을 터트리며 금메달 획득에 결정적인 활약을 펼쳤다.
이승엽의 어깨는 무겁다.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 무대에서 뛰며 '잘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이기에 중압감은 더욱 크다. 누구도 이해하거나 도와줄 수 없는 짐을 홀로 안고 간다.
이승엽은 "프로는 성적으로 증명한다"고 말한다. 잘하든 못하든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다. 연봉대박은 끊임없는 노력 속에 얻은 결과물이며 2군 강등 역시 그가 받아 들여야 할 운명이다. '국민타자' 이승엽을 향한 아낌없는 격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what@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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