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중국 광저우에서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뛸 투수들. 그것도 대표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준 투수들의 호투였기에 분명 의미가 깊었다. SK 와이번스 소속으로 나란히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승선한 정대현(32), 송은범(26), 김광현(22)이 제 구위를 유감없이 뽐냈다.
세 투수는 지난 9일 대전 한화전에 잇달아 마운드에 올라 모두 호투했다. 선발로 나선 김광현은 7이닝 3피안타(탈삼진 5개, 사사구 2개) 1실점을 기록했고 곧바로 바통을 이어받은 정대현은 ⅔이닝 퍼펙트 투구를 선보였다. 선발에서 마무리까지 전천후 활약 중인 송은범은 3이닝 1피안타 무실점에 탈삼진 5개를 솎아냈다.

기록만큼 내용이 좋았기에 이들의 동시 출격 경기는 분명 의미가 있었다. 데뷔 이래 한 시즌 최다승인 17승에 도전했던 김광현은 비록 상대 선발 훌리오 데폴라의 7⅓이닝 무실점에 가려져 승리 요건조차 충족하지 못했으나 초반 150km의 강속구를 거침없이 미트에 꽂는 모습을 보였다. 떨어지는 각이 좋은 결정구 슬라이더도 최고 139km에 달할 정도로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생동감 있게 꿈틀거렸다.
경기 전 김광현은 한결 여유있는 표정으로 경기를 준비했다. "아시안게임 때는 (김)강민이 형이랑 (송)은범이 형, (최)정이 형한테 내 세탁물 손빨래 좀 시켜야 겠다"라는 농담을 던지며 웃은 김광현은 제 몫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눈빛을 반짝였다. 류현진(한화)의 압도적인 투구에 가려진 감이 있지만 김광현 또한 16승 5패 평균 자책점 2.29(10일 현재)로 데뷔 후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지난 시즌 도중 손등 부상 이후 전체적인 투구 밸런스의 부조화로 팔꿈치 통증까지 입었던 김광현이지만 그는 다소 늦은 스타트에도 빠르게 제 페이스를 찾으며 위력을 뽐내고 있다. 2년 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일본 킬러'의 면모를 유감없이 비춘 김광현인만큼 최근 투구 내용이 빼어나다는 점은 또 한 번의 기대감을 불러 일으킨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유일한 대학생 선수로 이름을 올린 뒤 미국 타선을 제압하는 국제용 언더핸드로 일찌감치 각광받았던 베테랑 정대현의 활약도 눈부셨다. 스멀스멀 꿈틀대는 커브는 물론 타자 시점에서 시계 방향으로 훅 꺾어지는 싱커의 움직임도 좋았다.
탈삼진은 없었으나 타자의 타이밍을 흐트러뜨리는 투구가 눈부셨다.
특히 정대현은 최근 들어 140km 이상의 속구를 던지는 사이드암 투수가 많아져 오히려 정통 언더핸드 투수가 희귀해지는 시점에서 없어서는 안 될 카드이기도 하다. 당겨치는 힘은 탁월하지만 아직 배트 컨트롤 면에서 아쉬움이 있는 대만 타자들의 성향을 감안하면 대만전 필승 계투로의 활약이 기대된다.
송은범의 탁월한 구위는 1-1 무승부 결과 속에서 터져나온 섬광과도 같았다. 이날 송은범은 최고 152km의 속구를 연달아 꽂는 위력을 과시하며 우완 고갈로 인해 신음하던 '조범현호'에 한 줄기 빛이 되었다. 사사구 1개를 내주기는 했으나 150km 이상의 속구로 타자의 방망이를 헛돌게 하는 동시에 오른손 타자 몸쪽으로 꽉 찬 변화구를 꽂기도 했다.
선발과 계투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송은범은 이번 아시안게임이 더더욱 중요하다. 연고지 최고 유망주였음에도 기량 만개 시점이 다소 늦은 감이 있던 송은범은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금메달의 영광과 병역 혜택을 동시에 거머쥐고자 한다. 본연의 기량과 구위가 정점에 맞닿은 시점인 만큼 아시안게임에서의 활약도가 더욱 기대되는 우완 정통파임을 감안하면 투수진의 열쇠를 쥔 투수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4년 전 김재박 감독의 도하 참패를 목도했던 조 감독은 당시의 전철을 밟지 않고자 가능한 올 시즌 컨디션이 좋은 실력파 선수를 선발하는 데 집중했다. 2000년대 후반 가장 뛰어난 성적을 올린 팀에서 중추 역할을 도맡고 있는 '대표 투수 3인방'이 광저우에서도 맹위를 떨칠 것인지 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farinelli@osen.co.kr
<사진> 김광현-정대현-송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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