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보수-진보의 대립으로 어수선한 충무로 영화계가 다시 혼란에 빠졌다. 1960년대 최고의 톱스타이자 대한민국 미녀 톱스타의 대명사인 김지미(70)가 최근 미국에서 일시 귀국,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영화계를 떠난 배경을 털어놓으면서다.
현재 미국에서 가족과 살고있는 김지미는 최근 부산국제영화제가 마련한 '김지미 회고전' 준비와 참석차 귀국,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구구절절 국내 영화계에서 갑자기 사라진 이유을 밝혀 주목을 모으고 있다.
전성기 김지미의 주가는 지금 여늬 톱스타와도 비교하기 힘들다. 1968년 그녀는 '대원군'을 비롯 모려 31편 영화의 주연으로 출연했다. 한국영화가 온 국민의 사랑을 받고 단성사 피카디리 등 단관극장들이 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던 시절이다.

미남배우 최무룡과의 결혼과 이혼 등 미녀배우로서의 굴곡진 삶과 스캔들도 파란만장했다. 김지미란 이름 석자는 늘 한국영화계에서 이슈였고 화두였다.
그런 김지미도 1992년 거액을 들여 기획한 '명자 아끼꼬 쏘냐'의 참패 이후 현역 일선에서는 물러났고 이후 영화인협회 이사장 등으로 활약하다 2000년 6월 돌연 LA로 출국, 한국영화계에 사실상 연을 끊었다.
이에대해 김지미는 11-12일자 조선일보 'WHY' 특집면과의 인터뷰에서 2000년 전후 젊은 영화인과의 갈등이 어땠느냐는 질문에 " 나는 사실 그 때 명계남 문성근 이런 사람들 이름도 몰랐다. 얼굴 본 적도 없고. 그런데 영화인협회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면 될 것을 나서서 데모만 하니까 영화계 물을 흐리는 거 아니냐 싶었다"고 했다.
이어 "게다가 구세대는 다 물러가라니. 영화 역사를 지켜온 사람이 누군데, 왜 물러가야 하나. 선배가 잘못했다고 '넌희 다 물러가라' 이런 식이면 공산당과 뭐가 다른가.부모 잘못하면 업어다 고려장 시키나'라고 아직도 삭지않은 분을 표출했다.
김지미는 "(김대중 정권이 둘오서자) 왜 갑자기 그들이 혁명군들처럼 그랬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며 이후 1999년 영화진흥위원회 1기가 출범하며 위원에 선임됐지만 결국 신세길 위원장-문성근 부위원장 선출과정의 불법성을 지적하다 마찰을 일으켜 영화계를 떠난 것으로 주장했다.
한편 국내 영화계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또 한 번 홍역을 치른 바 있다.그동안 음지에서 지냈던 일부 원로와 보수 영화인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양측간의 해묵은 분쟁을 재현하는 중이다.
mcgwire@osen.co.kr
<사진> 영화 '길소뜸' 포스터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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