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속 캐릭터를 십분 표현하기 위해서는 뭐니 뭐니 해도 출중한 연기력이 필요하다. 일단 연기력이 수반된다면 그 역할에 맞는 외모나 스타일을 연출하는 것도 중요하다. 단 한 역할을 위해 당장 생김새를 바꿀 수는 없기에 배우들은 메이크업이나 헤어, 의상, 소품 등을 이용해 최대한 극중 캐릭터에 부합하는 스타일로 변신한다. 예컨대 형사 캐릭터라면 날긋한 가죽점퍼에 때 묻은 운동화를 신고 머리를 헝클어트리는 식이다. 또 재벌가 사모님 역할이라면 명품 브랜드의 의상을 협찬 받고 화려한 액세서리로 치장하는 것과 같은 전형적인 방식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최근 방영 중인 드라마 두 편 속 여주인공의 스타일 연출이 대조적이라 눈길을 끈다. SBS '내 여자 친구는 구미호'(이하 여친구)의 구미호 역 신민아와 '나는 전설이다'의 아줌마 밴드 리더 전설희 역 김정은이 주인공이다.
두 사람 모두 작품 속 여주인공으로 등장, 극의 중추 역할을 한다. 신민아는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가 2010년 현재를 살고 있다는 가상 설정에 충실 한다. 발달한 문명을 처음 접하는 까닭에 어리바리한 구미호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미소를 자아낸다. 주민등록증이 뭔지, 여권은 뭔지, 대학교가 뭔지, 알 턱없는 구미호의 천진난만한 에피소드는 작품을 보는 큰 재미다. 이에 극 초반 신민아는 하얀 소복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머리도 내추럴한 생머리를 길게 풀어 헤쳤다. 수천 년 세월을 건너 온 말 그대로 전설 속 구미호의 모습이다. 남주인공 차대웅(이승기 분)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차츰 요즘 세상에 익숙해져가고 있지만 그녀에게는 차대웅이 사 준 원피스 하나가 전부다. 소복 대신 원피스로 갈아입은 그녀는 액션스쿨 로고가 새겨진 가방을 메고도 싱글벙글 이다. 극중 에피소드를 통해 가끔 세련된 정장이나 패셔너블한 의상을 선보이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기본 스타일은 단벌 원피스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원피스 한 장, 수수한 옷차림으로 극중 구미호 캐릭터를 완성해냈다.


반면 '나전설' 속 김정은은 화려하기 짝이 없다. 극중 역할이 아줌마 밴드의 리드 보컬, 로커인 까닭에 온갖 다양한 패션 스타일을 선보인다. 이혼 전, 명망 높은 법조가의 며느리였던 전설희는 고가의 명품 의상으로 치장했다. 방송 전부터 김정은이 걸치고 나오는 의상의 브랜드와 가격이 이슈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극중에서 현재는 이혼을 하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며 밴드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차라리 이혼 전 부잣집 사모님일 때는 우아하고 기품 있는 의상을 역할에 맞게 선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이혼 후 전설희는 무대가 아닌 현실 속에서도 마치 무대 의상 같은 스타일로 일관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이라는 직업에도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탱크 톱, 튜브 톱 상의에 초미니스커트, 요란한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은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현실성이 제로다.
어려운 이웃들을 만나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때에도 킬힐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채 몸부림치는 전설희의 모습은 위태로워 보이기만 한다. 무대 의상과 무대 밖 의상의 경계가 모호한 전설희는 늘 벗고 다니거나 늘 치렁치렁하게 무언가를 달고 다닌다. 이러한 설정은 캐릭터의 진정성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시청자들은 '나전설' 게시판과 기사 댓글 등을 통해 '김정은 의상이 너무 튄다. 극 몰입 방해', '한 회당 수십 번은 갈아입는 것 같다. 협찬이 빵빵한가 보다', '아무리 밴드라지만 아줌마가 아가씨들도 소화하기 힘든 의상을...' 등 김정은의 의상 콘셉트에 대해 비아냥거림을 늘어놓고 있다.
'단벌' 신민아와 '패션쇼'하는 김정은, 과연 두 배우 중 누가 더 사실적이고 진정성 있게 캐릭터를 구현하고 있는지 시청자들은 알고 있다.
issue@osen.co.kr
<사진> 3WH, IM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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