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이 가을. 베테랑들이 하나둘씩 유니폼을 벗고 있다. 그야말로 은퇴 러시다.
프로야구를 이끌었던 베테랑들이 차례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박종호(LG)가 시즌 중 유니폼을 벗은 것을 시작으로 구대성(한화)이 지난 3일 성대한 은퇴식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진 가운데 양준혁(삼성)은 오는 19일 눈물 없이는 못 볼 은퇴식을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에는 안경현(SK)에 이어 이영우(한화)까지 줄줄이 은퇴를 선언했다. 시즌 전부터 은퇴를 예고한 김재현(SK)도 빼놓을 수 없다. 그라운드를 호령했던 베테랑들의 은퇴 러시가 가속화되고 있는 요즘이다.
▲ 스타들의 용단

올해 은퇴 선수들의 가장 큰 특징은 이렇다 할 잡음이 없다는 점이다. 스타급 선수들은 매년 은퇴 문제를 놓고 구단과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곤 했었다. 선수는 아직 더 뛸 수 있다고 자신하는데 구단은 세대교체와 고액연봉을 이유로 은퇴를 권유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건 선수 본인의 결심이다. 선수가 마음을 굳히고 결정을 하면 구단은 일을 처리하기 쉬워진다. 이 경우에는 아름다운 은퇴가 성립된다. 물론 구단에서도 선수를 박하게 대하지 않고, 은퇴의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견지해야함은 물론이다.
올 시즌 은퇴를 선언한 선수들 모두 같은 케이스로 볼 수 있다. 스타선수로서 팀에 짐이 되기 싫다는 자존심과 대선수답게 후배들에게 길을 터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용단을 이끌어냈다. 박종호는 "선수 생활을 정리할 때가 됐다. 친정팀 LG에서 은퇴하게 돼 기쁘다"며 물러났다. 양준혁은 "후배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 나와 팀을 위한 길"이라며 은퇴의 변을 밝혔다. 안경현은 "젊은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는 것이 선배의 몫"이라고 말했다. 구대성은 "누구나 야구에 대한 더 큰 욕심이 있겠지만 아쉬움이 남는 상황에서의 은퇴도 아름답다"며 뒤돌아섰다. 실제로 양준혁은 은퇴 선언 뒤 배팅볼 투수를 자처할 뿐만 아니라 경기 중 비가 올 때 장화를 신고 배수작업을 하는 등 대스타답지 않은 격의없는 모습으로 '좋은 예'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 구단들의 예우
과거에만 하더라도 은퇴 문제를 놓고 서로 얼굴을 붉히며 갈라선 선수들과 구단들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선수들의 용단과 더불어 구단에서도 그에 걸맞은 대우로 팀에 기여한 스타 선수들의 뒤안길을 쓸쓸하지 않게 하고 있다. 자주 볼 수 없었던 은퇴식이 이제는 자주 볼 수 있는 이벤트가 될 정도로 팬들에게는 익숙한 문화가 되어가고 있다. 지난 3일 구대성은 '은퇴식 전문' 한화 구단의 성대한 은퇴식 아래 팬들과 마지막을 함께 했다. 삼성은 19일 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은퇴식을 준비하며 양준혁과 팬들의 눈물을 쏙 빼낼 태세. 한화는 또 18일 이영우의 은퇴식도 '당연히' 잡아놓았다.
과거 은퇴식은 팀을 위해 공헌한 '프랜차이즈' 선수들에게만 한정돼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올해 한화는 롯데-SK에서 활약한 뒤 한화에서 선수생활 마지막 4년을 보낸 김민재의 뒤늦은 은퇴식을 지난달 6일 열어줬다. SK는 두산에서만 17년을 뛴 안경현의 은퇴식을 준비 중이다. 안경현이 극구 사양하고 있지만 SK 구단은 "20년을 그라운드에서 뛴 안경현에게 어떤 식으로든 존경의 뜻을 나타내고 싶다"며 은퇴식 세부계획을 잡겠다는 입장이다. 또한, 박종호는 은퇴 뒤 LG 2군 타격 인스트럭터로 선임됐다. 과거와 비교하면 우리나라 구단들이 얼마나 성숙해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 '아름다운 은퇴'란 꼭 정상에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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