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은 지독히도 그를 따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기 자신보다 주위를 먼저 챙길 줄 아는 그런 남자였다.
한화 외국인 투수 훌리오 데폴라(28)는 지난 15일 대전 넥센전에서 다시 한 번 인상적인 피칭을 펼쳤다. 6⅓이닝 동안 104개 공을 던지면서 4피안타 4볼넷 5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하며 승리투수 요건을 갖춘 채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변수가 데폴라를 덮쳤다. 8회 3루수 전현태가 공을 뒤로 빠뜨리는 결정적인 실책을 범해 3-3 동점이 되면서 기대했던 7승째가 날아간 것이다.
그러나 데폴라에게는 그리 낯선 장면이 아니다. 지난 7일 대전 SK전에서 7⅓이닝 5피안타 3볼넷 3탈삼진 무실점으로 완벽한 피칭을 하며 승리투수 조건을 갖춘 채 마운드를 내려갔지만, 박정진이 9회 이호준에게 동점 솔로 홈런을 맞아 역시 승리가 물거품된 바 있다. 올해 데폴라는 선발등판시 9이닝당 득점지원이 4.14점으로 15차례 이상 선발등판한 투수 중 류현진(4.11) 다음으로 낮은 투수다.

하지만 데폴라는 등뒤의 이름보다 가슴의 팀명을 중시할 줄 아는 선수였다. 이날 경기 후 데폴라는 "내가 승리투수가 되든 안 되든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저 팀이 이겨서 좋다"며 "전현태가 내게 자꾸 미안하다고 하는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고 또 괜찮다. 그가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실책을 저지른 전현태를 감싸안았다. 우락부락한 얼굴과 다르게 순하기로 소문난 데폴라다웠다.
데폴라는 9월 들어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실히 떨치고 있다. 9월 3경기에서 승없이 1패만 안고 있지만, 평균자책점이 1.65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짠물 피칭을 펼치고 있다. 피안타율도 2할1푼4리에 불과할 정도로 막강한 구위를 자랑 중이다. 최고 150km 강속구가 미트에 펑펑 꽂히는 가운데 타자의 눈을 속이는 슬라이더도 잘 먹히고 있다. 제구가 가끔 흔들리지만 충분히 위력적이다.
데폴라는 "재계약해서 내년에도 꼭 한화에서 다시 뛰고 싶다"고 희망했다. 9월의 무력시위라면 재계약을 기대해 봐도 좋을 듯하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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