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한(?) 자태에 걸맞지 않는 투지와 승부 근성. 그래서 팬들이 선배를 가리키던 '할매'라는 별명을 그에게 선사한 모양이다. 2년차 외야수 정수빈(20. 두산 베어스)이 다시 한 번 팀의 필수 요소로 물들고 있다.
정수빈은 지난 17~18일 목동 넥센전서 연이틀 결승타를 때려내며 팀의 신승을 이끌었다. 17일에는 상대 마무리 손승락의 슬라이더를 빗겨 쳐 2타점 2루 내야안타를 때려냈고 18일에는 좌완 박성훈으로부터 결승타를 때려내는 기염을 토했다. 이미 3위가 확정된 두산이지만 정수빈의 활약은 분명 컸다. 정수빈의 올 시즌 성적은 71경기 3할6리 1홈런 15타점 12도루.(18일 현재)

팬들은 최근 들어 정수빈을 가리켜 '할매'라는 별명을 붙이고 있다. 원래 '할매'는 현재 팀 원정 기록원으로 일하고 있는 전상렬의 별명이었다. 강인하기보다 유순해 보이는 외양과 잔정 많은 성격 때문에 전상렬은 동료들 사이 할매로 불렸다. 김인식 현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장이 두산 감독으로 재직하던 시절 "대타 할매"라는 교체 의향을 이야기하자 심판이 곧바로 숙지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
전상렬의 현역 시절 활약상은 화려하지 않았으나 분명 인상깊었다. 2004시즌에는 주전 중견수로 나서 2할7푼4리 5홈런 42타점 15도루를 기록하며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공헌했고 이듬해에는 전 소속팀이던 한화를 상대로 플레이오프에서 불방망이를 휘두르며 병역파동 직격탄을 맞았던 팀을 한국시리즈 진출까지 이끌었다. 필요할 때는 결정적인 한 방도 보여줬고 기본기가 잘 갖춰진 수비력은 경기 후반을 장식했다.
젊었을 적 전상렬의 맹활약을 재현하는 듯한 모습으로 정수빈 또한 할매라는 별명을 얻고 있는 것. 두 사람에게 서로 할매라는 별명에 대해 묻자 그들은 서로 웃으며 나쁘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전상렬은 "솔직히 정수빈의 플레이를 보다보면 내 현역 시절이 생각나는 것도 사실"이라며 후배의 활약상과 팬들이 비교해주는 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정수빈은 어떨까.
"전상렬 선배께서 팀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하셨잖아요. 얼마 전 다이빙캐치 장면이 캡쳐되었을 때 할매라는 별명이 같이 올라있는 것도 봤습니다.(웃음) 저랑 상렬 선배가 닮기는 닮았나봐요. 하하".
타율 3할을 상회하고 있지만 사실 정수빈의 시즌 목표와 비교하면 올 시즌 성적은 아쉬움이 있던 것이 사실. 정수빈은 데뷔 시즌 감초같은 활약을 선보인 뒤 "걸출한 선배들이 팀 내에 계셔서 풀타임 출장이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2010년에는 2할8푼에 30도루를 하고 싶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지난 3월 초 시범경기 도중 왼쪽 쇄골 골절로 인해 5월 31일 1군 재등록까지 두달 넘게 치료와 2군 경기 출장에 몰두했다. 그 시간을 만회하겠다는 정수빈의 투지는 남다르다. 무명 백업 선수로 한 차례 방출과 또 한 차례 트레이드를 거쳐 오랜 시간 동안 교체 요원의 삶을 보냈음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전상렬의 정신력을 돌아보면 그 점도 은근하게 닮아있다.
유신고 시절부터 기본기가 잘 갖춰진 예쁜 야구를 펼친 동시에 엄청난 연습량을 자랑하며 프로에서의 대성을 노리던 정수빈. '약방의 감초' 노릇을 하던 선배의 별명을 팬들로부터 물려받은 정수빈이 앞으로 어떤 활약상을 펼칠 것인지 더욱 궁금해진다.
farinell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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