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소설‧평론 그리고 게임…
2003년 리니지2 접하며 게임에 빠져

소설‧영화‧게임 합친 디지털 노블 연구
사회적 지탄? 살아있는 문화이기 때문
[이브닝신문/OSEN=최승진 기자] 조선 후기 상업적 민간출판 소설인 방각본(坊刻本)이 등장한 후 이를 보면 패가망신한다는 인식이 짙었지만 세월이 흐른 뒤 여인과 아이들의 문자 해독력을 키워준 매체로 재조명 받았다. 일부에서는 게임도 이와 궤를 같이할 것이란 예상을 내놓고 있어 주목된다.
이인화(본명 류철균·44)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를 만나기 위해 지난 1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신세계관을 찾았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빼곡히 채워진 책 더미 속에서 한 눈에 그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교수님 계십니까?”라고 묻자 모니터 사이로 멀찍이 그가 나타났다. 작지만 다부진 체구, 선하지만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눈빛이 그의 첫인상이었다.
소설 ‘영원한 제국’의 인기작가 이인화 교수는 게임업계에서 게임광으로 불린다. 어찌 보면 그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점잖은 대학교수의 이미지와 다르다. 온라인게임을 좋아해 한 때 식사도 잠도 잊은 채 게임에 몰두한 경험도 있다. 그의 실력은 프로게이머 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상당하다. 직접 게임 시나리오 작업에 나선 적도 있다. 2005년 출시된 온라인게임 ‘길드워’가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렇다면 대학교수이자, 소설가 그리고 문학 평론가였던 그의 삶에 게임이 큰 의미로 자리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또 게임산업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서 충분한 동력을 갖추고 있을까. 책 냄새 가득한 그의 사무실에서 대화를 나누던 동안 게임에 대한 옹호를 넘어 깊은 애정이 있음을 느꼈다.
-필명이 이인화인데 무슨 뜻인가?
▲두 사람이란 뜻이다. 소설과 평론의 두 사람 몫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이인화(二人化)로 필명을 정했다.
-어떤 계기로 게임과 인연을 맺었나?
▲2003년 함께 일하던 보조 작가가 풀3D로 돌아가는 온라인게임이 나왔다고 말해 ‘리니지2’를 접한 것이 인연이 됐다. 학창시절 때는 게임에 빠져있던 아이들을 보면 한심스럽게 생각했는데 이 게임을 즐기자 처음부터 빠져들게 돼 스스로도 무척 놀랬다.
-무엇에 놀랐나?
▲리니지2에 접속해 보니 수십만명이 함께 접속해 각자 자기 드라마를 만들고 있더라. 모든 사람들이 서로 도와주려고 하고 주변인들이 재미있는 것을 함께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동질감과 친밀감을 느꼈다.
-게임을 연구하게 된 사연은 무엇인가?
▲리니지2를 즐기면서 상호작용이 포함된 새로운 스토리 양식으로서의 게임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느꼈다. 또 이를 연구하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직접 연구해봐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요즘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새로운 소설을 쓰고 게임도 개발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노블을 새로운 게임 장르로 실험하고 있다.
-연구 중인 디지털 노블에 대해 자세하게 말해 달라.
▲소설, 영화 그리고 게임이 함께 존재한다. 이중 소설과 영화는 도입부로 길 안내 역할을 한다. 게임은 마지막에 등장해 종합적인 스토리를 제시한다. 애플 아이패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와이어드 잡지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이 잡지는 직접 시연할 수 있는 다양한 멀티미디어 요소와 상호작용 요소가 흥미를 유발한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게임은 어떤 장르인가?
▲RPG(모험성장게임)다. 소설과 영화로 먼저 겪었던 경험들을 특정 역할을 수행하면서 종합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현대사회에서 게임의 가치는?
▲시인 김수영은 모든 살아있는 문화는 불온하다고 했다. 게임이 사회적인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은 살아있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록큰롤도 1960년대 미국에서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문화였다. 그러나 현재는 어떤가. 당시 사회 소수자들의 문화가 꽃을 피워내게 만드는 계기를 만든 것은 물론 이들이 자유와 평화 그리고 휴식을 얻을 수 있게 했다. 게임의 문화적인 가치는 여기에 있다고 본다. 요즘 사회 소수자들은 게임을 통해 60년대 록큰롤과 같은 문화적 교감을 한다.
-게임이 발전하기 위한 과제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게임과 스토리는 다르다고 여겨져 왔다. 게임과 스토리는 같은 간접경험의 다른 측면이다. 따라서 게임이 단순한 기술의 차원을 넘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스토리와의 결합이 중요하다.
-온라인게임은 사용자가 중요하다
▲맞는 얘기다. 개발자가 온라인게임의 발단, 전개의 스토리를 제시한다면 절정, 결말의 스토리는 사용자가 만들어 나간다. 이를 통해 디지털 환경에서는 사용자들과의 교감을 통해 완성되는 스토리가 대세를 이루게 될 것이다.
-40대에 게임을 즐기는 의미는?
▲40대에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교양이 탄생했다고 본다. 예전에는 독서였지만 현재 게임을 하면서 내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
-평소 생각해왔던 게임의 정의는?
▲게임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굳이 정의하자면 인간이 살아있는 것에 대한 기쁨을 표현하는 또 다른 놀이라고 생각한다.
shaii@ieve.kr /osenlif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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