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전 만큼은 지고 싶지 않다. 꼭 승리투수가 되고 싶다".
친정팀과 대결을 앞두고 다졌던 굳은 각오가 무색했다. LG 사이드암 박현준(24)이 쓴잔을 들이켰다. 누구보다 승부욕이 강한 박현준 입장에서는 당연히 화가 났다. 그러나 아버지 때문에 오히려 기분좋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박현준은 23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SK와의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 6⅓이닝 동안 홈런 1개 포함 8피안타 3실점해 패전을 떠안았다.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 이하)를 기록했으나 팀 타선이 침묵하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시즌 3패(2승)째.

지난 7월 28일 SK와 LG의 4 대 3 트레이드를 통해 투수 김선규, 포수 윤상균과 함께 LG 유니폼을 입은 박현준. "친정팀에게 나의 진가를 반드시 보여주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말해왔을 정도로 SK전에 임하는 각오가 남달랐다. 지난 17일 잠실에서 첫 SK전에 나섰으나 승패 없이 6⅓이닝 4실점하며 물러난 아쉬움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날 경기는 자신이 선발로 마운드에 선 후 처음으로 부모님 앞에서 갖는 가족 앞에서의 선발 데뷔전이었다. 오전 10시부터 고향 전주에서 직접 차를 몰고 온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특히 외동아들인 박현준이 "내가 야구를 하는 이유"라던 아버지 박종만(45) 씨가 지켜 보고 있어 더욱 이기고 싶었다. 때문에 더욱 자신이 실망스러웠다.
그런데 경기 후 만난 아버지의 이야기에 어느새 기분이 확 풀렸다.
박현준의 아버지 박종만(45) 씨는 인천 문학구장에 자신의 차를 주차시켜 놓았다. 그런데 경기 후 다시 와보니 주차된 차 앞 범퍼가 완전히 내려앉은 상태였다. 불행 중 다행인지 가해자가 바로 SK였다. 구단 아르바이트생 중 한 명이 짐을 옮기다 실수를 한 것이었다. SK측은 곧바로 자동차에 남겨진 휴대폰에 배상하겠으니 연락을 달라는 메시지를 남겨 놓았다.
재미있는 것은 박 씨의 반응. 박 씨는 오히려 "괜찮으니 내가 해결하겠다.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이에 더 미안해진 SK측이 계속해서 배상의사를 밝혔지만 박 씨는 극구 손사래를 치며 자비로 해결할 뜻을 분명히 했다.
박현준은 "아버지도 처음에는 황당했던 것 같았다. 앞에 주차된 차들도 많은 데 하필 아버지 차가 부서져 있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듣고 'SK와는 악연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내 "그런데 아버지 입장에서는 SK에게 나름대로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던 것 같다. 비록 지금 내가 소속된 구단이 아니지만 나를 (2차 1번으로) '뽑아줬고 데리고 있어줬고 키워준 구단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시더라"면서 "SK쪽에서도 아버지 차인지 몰랐을텐데 연락처를 남기지 않았나. 그런 구단에게도 고맙다. 제일 존경하는 아버지와 첫 소속팀이었던 친정팀 SK 사이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오늘 팀도 지고 나도 진 경기가 빨리 잊혀질 것 같다"고 함박 웃음을 터뜨렸다.
letmeout@osen.co.kr
화보로 보는 뉴스,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OSEN 포토뉴스’ ☞ 앱 다운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