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투수는 분명 나타나고 있지만 리그를 확실히 장악하고 있는지 여부는 의문부호가 수두룩 하다. 2007시즌 이후 외국인 투수가 선수 수급 시장의 대세를 이루고 있으나 정작 15승 이상, 평균 자책점 3점 대 미만의 투수는 나타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2010 페넌트레이스 일정 종료일인 26일 현재. 올 시즌 외국인 투수 최다승은 카도쿠라 겐(SK)과 켈빈 히메네스(두산)가 기록한 14승이다. 지난 22일 잠실 두산전에서 2⅔이닝 50구 투구를 펼쳤던 카도쿠라가 계투로 등판해 15승을 따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으나 일단 외국인 투수의 선발 15승은 물 건너간 것이 사실.

또한 카도쿠라의 시즌 평균 자책점은 3.22에 히메네스는 3.32를 기록 중이다. 좋은 투수임에 분명한 비율 스탯이지만 리그를 쥐락펴락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올 시즌 평균 자책점 부문 1위 류현진(한화)은 1.82로 경이적인 성적을 기록 중이며 2위 김광현(SK)도 2.37의 성적을 남겼다.
2007시즌 다니엘 리오스(당시 두산, 22승)와 케니 레이번(당시 SK, 17승) 이후 국내 무대에서 한 시즌 선발로서 15승 이상을 올린 외국인 투수가 배출되지 않고 있다. 외국인 타자가 자리를 잃는 대신 투수가 대세를 이루는 형국을 떠올려보면 무언가 아이러니한 상황.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지난 시즌에는 아킬리노 로페즈(KIA)가 14승 평균 자책점 3.12로 공동 다승왕좌에 오르는 탁월한 성적을 올렸다. 투수 부문 골든 글러브의 영예도 그에게 돌아갔으나 이는 페넌트레이스에서의 활약보다 한국시리즈 2승의 공헌도가 큰 가산점으로 반영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1이닝 4피홈런 굴욕(2009년 6월 9일 목동 히어로즈전-우천 노게임)을 맛본 경기 등 로페즈는 5월(평균 자책점 5.06)과 6월(평균 자책점 4.34) 흔들리며 경기 당 기복이 있던 전반기를 선보였던 바 있다. 이를 감안했을 때 로페즈는 지난해 최고 외국인 투수였음에 틀림없지만 역사에 한 획을 긋는 투수로 보기는 어렵다.
2008년에는 15승은 커녕 10승 이상을 기록한 외국인 선발 투수가 단 한 명에 그쳤다. 그해 10승 평균 자책점 3.93을 기록했던 크리스 옥스프링(LG)이 그 주인공으로 그는 봉중근과 함께 그 해 최하위에 그친 LG 마운드의 믿을 구석이었다.
그러나 옥스프링 또한 리그를 압도하는 투수는 아니었다. 10승을 거둔 대신 10패를 떠안았으며 174이닝을 소화하면서 182개의 안타를 내줬다. 제 몫은 하는 투수였으나 압도적인 경기는 앞서 언급된 카도쿠라, 히메네스, 로페즈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같은 호주 출신 브래드 토마스(당시 한화)는 그 해 31세이브를 올리며 내실 있는 활약을 보였으나 그는 애석하게도 경기 후반에나 모습을 비추는 마무리 투수였다.
최근 3년 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준우승 쾌거가 이어지며 나온 현장의 이야기 중 하나는 국내 선수들의 기량 성장이다. 특히 국제 무대에서 상대적으로 빛을 못 보던 타자들의 기량이 한층 성장했다는 평이 늘었다. "일본 타자들에 비해 힘에서는 오히려 우위에 있다"라는 의견이 국내는 물론 미-일 스카우트들 사이에서도 자주 나왔다. 비시즌 900g대 무거운 배트를 이용해 손목을 쓰는 요령을 키우는 훈련 방식이 국내에도 소개되기 시작하는 시점.
그에 반해 새롭게 가세하는 외국인 투수들의 기량이 국내 타자들의 성장세 만큼 높아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붙는 것이 사실이다. 올 시즌 퇴출의 칼을 맞은 에드가 곤잘레스(전 LG)와 호세 카페얀(전 한화)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주목받던 전도유망한 투수들이었으나 1승 조차 거두지 못한 채 한국을 떠났다. 승운이 따르지 않은 이유도 있으나 국내 타자들의 패턴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컸다.
넥센의 한 타자는 "구위는 좋지만 움직임이 심해 가만히 있으면 볼이 되는 공도 많았다. 스윙을 하려는 듯 자세를 취했다가 기다리면 제 풀에 스스로 지치더라"라며 곤잘레스의 투구를 평했다. 올 시즌 로만 콜론과 2년 전 케인 데이비스(이상 KIA)는 나무랄 데 없는 구위를 갖췄으나 투수 본연의 도루 저지 능력이 크게 떨어져 빠른 발의 주자들이 출루했을 경우 고전했다.
또한 요미우리 출신의 좌완 애드리안 번사이드(넥센)는 절묘한 제구력을 갖췄다는 평을 얻었으나 정작 올 시즌 140이닝을 던지는 동안 무려 100개의 사사구를 내줬다. 탁월한 구위와 보기 드문 변화구 구사력 등 투구 요소 1,2개의 절호조만으로 국내 리그에서의 확실한 성공은 장담할 수 없는. 점차 완벽한 외국인 투수를 바라는 것이 현재의 프로야구다.
국내 투수들이 개인 성적 선두권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 나쁘지 않은 현실이다. 그러나 그 위치를 범접할 수 있는 새 얼굴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결코 웃음으로 넘겨버릴 수 없다. 국내 투수들에 긴장감을 조성하며 정상급 투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동시에 '메기 효과'를 통해 더 높은 질의 야구를 선보이게 할 수 있는 외국인 투수의 필요성도 분명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farinelli@osen.co.kr
<사진> 히메네스-카도쿠라.
화보로 보는 뉴스,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OSEN 포토뉴스’ ☞ 앱 다운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