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의 4번타자' 최진행, 그가 이겨낸 곡절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10.09.27 09: 46

2년 전 춘천 의암구장. 프로야구 퓨처스 올스타전이 열렸다. 한 남자가 축제에 초대됐다. 그는 "2군이지만 올스타에 뽑혀 기분이 좋다"며 웃어보였다. 그는 유망주였지만 1군의 벽을 넘지 못하고 2군에만 머물러있었다. 하지만 그는 "2군은 배움터다. 더욱 완벽한 상태로 1군에 올라가겠다. 언젠가는 팬들의 기대에 꼭 보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가 지금 한화의 4번 타자 최진행(25)이다.
▲ 인고의 세월
덕수정보고를 졸업하고 2004년 고졸 신인으로 데뷔한 최진행은 한때 '괴물'로 불렸다. 2004년 5월 한 달 동안 8홈런 23타점을 휘몰아치며 소년장사의 등장을 알렸다. 3경기 연속 스리런 홈런을 터뜨릴 정도로 인상 깊은 플레이가 많았다. 그러나 이후 상대팀으로부터 약점을 분석당하며 괴력이 멈췄다. 냄비처럼 뜨겁게 달아오르다 식어버린 시즌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고졸 신인타자가 보여준 괴력은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다음을 기대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다음'이 좀처럼 오지 않았다. 2005년 1군에서 고작 1경기 출장에 그친 그는 경찰청에 입대해 2년간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가끔 찾아오는 1군 기회에서 실수를 연발하며 2군으로 내려가기 일쑤였다. 심지어 1군에 올라온 바로 다음날 2군으로 강등된 적도 있었다. 당시의 최진행은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큰 실수를 저질렀다. 2군행은 당연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괴물은 껍질을 깨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던 기회가 드디어 찾아왔다. '우상' 김태균에 이어 이범호까지 일본으로 건너갔다. 한화 팀 타선은 양 기둥이 통째로 뽑혀버렸다. 앞이 캄캄하던 한대화 신임 감독은 최진행을 유심히 지켜봤다. 힘 하나는 장사였다. 현역 시절 강타자로 명성을 떨친 그답게 재능을 알아봤고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김태균도 일본으로 떠나면서 최진행에게 큰 동기부여를 했다. "내가 가니까 네가 잘해야 한다"는 것이 김태균의 말이었다. 최진행은 우상으로 따랐던 김태균의 그 말을 가슴 속 깊이 새겼다.
▲ 깨버린 껍질
오랜만에 스포트라이트는 최진행을 향했다. 그만큼 부담도 컸다. 겨우내 부단하게 연습하며 맞이한 개막 첫 2연전. 8타수 무안타에 삼진만 5개나 당했다. 그러나 한대화 감독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뚝심있게 최진행을 중심 타순에 배치하며 밀어줬다. 최진행은 "감독님께서 믿어주신 덕분에 마음을 편하게 먹었다"고 말했다. 믿음 속에서 조금씩 껍질을 깨고 나왔다. 김태완에게만 집중된 상대팀들의 견제는 최진행에게 좋은 먹잇감이었다. '김태완만 거르면 된다'는 생각이 오산이 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5월에만 9개 홈런을 몰아친 최진행은 당당히 홈런레이스에 뛰어들었다. 6월에도 7개 홈런을 터뜨리며 롯데 4번타자 이대호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홈런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7~8월 여름이 되자 한 차례 고비가 찾아왔다. 바깥쪽 코스에 약점을 드러내자 상대 배터리는 그곳을 집중공략했다. 마음이 급해진 최진행의 방망이도 쉽게 따라나왔다. 슬럼프가 찾아온 것이었다. 붙박이 주전 첫 해 찾아온 슬럼프를 대처하기란 쉽지 않았다. 한대화 감독도 "이대로는 내년에도 어렵다. 공략할 수 있는 코스가 많아야 한다"며 채찍을 들었다. 
 
슬럼프를 한 차례 겪은 최진행은 더 성숙해졌다. 최진행은 "나 역시 약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밸런스와 기술의 문제다. 스트라이크존에서 한 두개 빠지는 공에 대한 대처가 많이 떨어진다. 보완해야 할 것이 많다"고 자가진단했다. 깨달음을 얻은 최진행은 멈췄던 홈런공장을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쌓이기 시작한 홈런갯수는 어느덧 30개가 되어있었다. 최진행은 "태균이 형의 31홈런을 목표로 하겠다"고 말했다. 그 목표를 달성하더니 아예 넘어버렸다. 김태균의 31홈런을 넘어 32홈런을 달성해낸 것이다.
▲ 성장은 진행
시즌 막판 최진행은 인상적인 홈런포를 많이 날렸다. 지난 15일 대전 넥센전에서 시즌 30홈런을 연장 끝내기포로 작렬시켰고 17일 대전 롯데전에서도 결승 스리런포를 날렸다. 시즌 최종전이 된 26일 대전 KIA전에서도 양현종으로부터 역전 결승 스리런포를 터뜨려 강한 인상을 남겼다. 올해 최진행이 때려낸 32홈런 중 결승 아치가 7개나 되는데 이는 리그에서 가장 많은 수치다. 3점차 이내 상황에서 나온 홈런도 무려 25개다. 한화는 최진행이 홈런을 친 30경기에서 20승10패를 기록했다. 최진행의 홈런이 한화의 승리였다.
최진행은 "올해 생각한 목표들을 이뤄 기분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이어 "주전으로 나온 첫 해치고는 만족스럽다. 홈런 목표치를 이뤘고 타점도 많이 했다. 다만 타율은 더 끌어올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올해 최진행은 129경기에서 타율은 2할6푼1리에 그쳤지만 32홈런과 92타점으로 4번타자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홈런 2위에 타점 5위의 성적표다. 하지만 한대화 감독은 "홈런 갯수에 비하면 타점이 적은 편이다"고 꼬집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더 잘하라는 의미. 한 감독은 "올해 기대이상으로 잘해준 것은 맞다"면서도 성에 차는 않는 표정이다.
장종훈 타격코치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최진행이 올해 30홈런을 치면 절을 하겠다고 했던 장 코치는 "진짜로 절을 하려고 했는데 흐지부지됐다"고 웃으면서도 크게 만족하지는 않았다. "첫 해치곤 잘했지만 코치 입장에서는 욕심이 더 난다.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선수다. 너무 쉽게 삼진을 당하거나 나쁜 공에 방망이가 나가는 것만 보완하면 더 좋은 타자가 될 수 있다"며 최진행이 안주하지 말고 더 정진하기를 바랐다.
이심전심일까. 최진행은 "세밀한 부분을 고쳐볼 생각이다. 도전에 대한 두려움에 안주하는 것보다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게 맞다고 본다. 30홈런도 3년 연속 친 것도 아니고 이제 겨우 한 시즌 쳤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곧바로 일본으로 교육리그를 떠날 것이다. 그곳에서 장 코치님과 기술적으로 정신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것이다. 쉬어봤자 뭐하겠나"며 웃어보였다. 최진행의 성장은 진행 중이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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