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亞 최다승 위업' 박찬호, 피와 땀의 124승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10.10.02 12: 43

역경과 좌절을 이겨낸 인간승리였다.
'코리안특급' 박찬호(37)가 마침내 아시아 최다승 고지를 밟았다. 박찬호는 2일(한국시간) 선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플로리다와의 원정경기에서 두 번째 투수로 구원등판해 3이닝을 탈삼진 6개 포함 퍼펙트로 틀어막았다. 시즌 4승(3패)째이자 개인 통산 124승(98패)째를 달성했다. 노모 히데오(123승)를 2위로 밀어내며 명실상부한 메이저리그 아시아 통산 최다승 투수 자리에 오른 것이다.
지난 1994년 120만 달러를 받으며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박찬호는 1996년부터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발돋움하며 무서운 속도로 승수를 쌓아나갔다. 이후 2001년까지 다저스에서 6년간 80승을 쌓았다. 이때의 활약을 발판 삼아 텍사스와 5년간 650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FA 계약을 맺으며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쥐었다. 통산 200승도 문제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텍사스로 온 뒤부터 박찬호에게 역경이 찾아왔다. 다저스 시절 말미부터 찾아온 허리 부상이 박찬호를 괴롭혔다. 여기에 햄스트링 부상까지 겹쳤다. 거액을 투자해 모셔온 투수가 드러눕자 여론도 차갑게 식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2005년 개인 통산 100승을 돌파한 박찬호는 시즌 중반 샌디에이고로 트레이드되며 데뷔 후 처음으로 이적이 아닌 타의에 의한 트레이드도 겪어야 했다.
대형계약에서 벗어나 심적으로 편해지는가 했지만 이번에는 예상치 못한 장출혈이 박찬호를 쓰려뜨리려 했다. 하지만 박찬호는 불굴의 의지로 이겨내 시즌 막판 복귀했고 마침내 데뷔 후 처음 포스트시즌 무대까지 밟는 영광을 누렸다. 이후 2007년 뉴욕 메츠로 이적한 박찬호는 급격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딱 한 차례의 선발 기회에서 뭇매 맞아 방출됐고, 시즌 중 마이너 계약으로 휴스턴에 갔으나 끝내 메이저리그에 오르지 못했다.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 후 가장 오랜 시간 마이너리그에 머물러야 했다. 이제는 모두가 힘들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2008년 친정팀 다저스로 돌아온 박찬호는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특징이라면 선발투수가 아닌 구원투수로 재기에 성공한 것이라는 점이다. 구원투수로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박찬호의 선발에 대한 의지는 굽혀지지 않았다. 2009년에는 선발 꿈을 이루기 위해 필라델피아로 옮겼다. 기대했던 선발로는 부진했지만, 불펜으로 돌아가 제 몫을 해냈다. 생애 처음으로 월드시리즈라는 큰 무대까지 경험한 건 박찬호에게 큰 동기부여가 됐다.
박찬호는 우승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올해 필라델피아에서 양키스로 다시 한 번 팀을 옮겼다. 그러나 양키스에서는 좀처럼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시즌 중반에 방출당하는 비운까지 맛본다. 이때 개인 통산 승수는 122승. 노모 히데오의 123승에 딱 1승 모자란 상황이었다. 어렵사리 피츠버그에 새 둥지를 튼 박찬호는 이를 악물고 던졌다. 우승의 꿈을 위해 건너간 양키스에서 최하위 피츠버그로 옮겼지만, 그에게는 124승이라는 꿈의 숫자가 있었다. 그리고 3이닝 퍼펙트로 그 꿈을 마침내 이뤄냈다.
숱한 좌절과 역경을 이겨낸 박찬호에게 124승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16년간 476경기를 위해 흘린 피와 땀이 배인 노력의 결정체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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