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가?방가!’ 육상효 감독, "난 스스로 웃기는 사람…코미디가 좋다"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0.10.04 15: 23

-피플-
 
영화 일 하던 선배 믿고 기자 생활 그만

미국유학 중 ‘아이언 팜’으로 감독 데뷔
어렵지만 정치 풍자에 도전해보고 싶어
[이브닝신문/OSEN=백민재 기자] 육상효 감독은 기자 출신이다. 잘나가던 회사를 그만두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내가 선택한 길이니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이번에 개봉한 영화 ‘방가?방가!’에서는 이주노동자 문제를 다뤘다. 취업난과 이주노동자의 냉혹한 현실 속에서 그는 코미디를 완성해 냈다. ‘달마야 서울 가자’ 이후 6년 만이다.(리드 끝)
 
-6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영화를 준비하면 세월이 금방 지난다. 40대 초반에 시작했는데 50대 중늙은이가 다 돼간다(웃음). 시나리오 완성하는데 한 5년 걸렸고, 그 사이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보냈다. 젊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니 좋더라. 투자에 시간이 걸렸지만, 어찌됐든 영화 작업은 중단 없이 이어져 왔다.
 
-외국인 노동자를 소재로 한 이유는.
▲문화가 다른 사람들끼리의 만남은 늘 재미있는 소재라 생각한다. 미국에서 백인 사회의 아웃사이더로 몇 년 살아 봤으니, 이방인에 대해 느낀 점도 많았고. 취재하며 외국인 노동자들과 자주 만났고, 실제 가구 공장에서 일도 해봤다. 공장 시스템을 알아야 하니까. 외국인들과 술 마시고 나이트클럽도 가고(웃음). 처음부터 어두운 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자신들이 피해자로 묘사되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러더라. “영화요? 뻔하겠네. 우리 두들겨 맞고, 손가락 잘리고, 추방당하는 이야기죠?”라고. 당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그런 시각이다.
 
-유독 코미디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
▲코미디는 약자의 이야기다. 나는 내가 약자라고 생각한다. 강자라면 액션물을 찍겠지. 진지한 드라마가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대중과의 접점은 넓은 게 코미디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를 웃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남을 웃기는 데 희열을 느끼는 것. 그게 가장 원초적인 이유 아닐까.
 
-처음에는 영화가 아닌 다른 일을 했는데.
▲서울대 국문과 82학번인데, 늘 영화에 대한 꿈은 가지고 있었다. 동기들이 모두 취직해서 나갈때도 나는 영화 아카데미에 갈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졸업직전 갑자기 그 삶이 너무 두렵게 다가왔다. 부랴부랴 취직 준비를 했다. 첫 직장은 제일기획이었다. 한 4~5개월 일했나. 한 때 예술가를 꿈꿨으니 “내가 지금 자본주의 최전선에서 뭐하는 건가” 싶은 회의감이 밀려왔다. 아마 지금처럼 세상을 더 알았다면 계속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신문사는 어떻게 들어가게 됐나.
▲친구가 한국일보 원서 넣을 때 따라갔다 덩달아 일간스포츠에 원서를 넣게 됐다. 거기서 영화 담당기자를 하거나, 출판 담당을 하면 괜찮겠다 싶었다. 입사한 뒤 영화에 관심 있다고 했더니 연예부로 보내더라. 그런데 영화가 아닌 방송담당이었다. 그 당시에는 야구 시즌이 끝나면 무조건 연예인 스캔들 기사가 최고였다. 스캔들을 캐내야 하는데, 그걸 잘 못하겠더라. 매니저와 술도 많이 마셔야 하니 힘들었다. 아마 잘 알거다.
 
-그러다 다시 영화판으로 뛰어들었다.
▲영화 일을 하는 선배가 찾아와 자기가 조감독이라며 “이번에 내 밑에서 연출부 생활을 해라. 이번에 내가 조감독에 네가 연출. 다음에는 내가 감독, 네가 조감독….” 요렇게 수학적으로 풀어내더라. 지금 생각하면 아무런 보장도 없는데(웃음). 며칠 고민하다 사표내고 나와 버렸다. 그런데 영화사 들어간 1주일 뒤 그 선배가 “나 잘렸으니 너도 알아서 살 길 찾아봐”라고 하더라. 인생 갑갑하더라. 놀고 있는데 김홍준 감독이 시나리오 작업 제의를 해 왔다. 고 김현식의 이야기를 다룬 ‘사랑의 가객 김현식’이라는 책을 쓴 적이 있는데, 그걸 재미있게 읽었단다. 그때 쓴 게 ‘장밋빛 인생’(1994)이다. 그 작품으로 그해 영화제의 각본상은 다 받았다. 대종상부터 백상예술대상까지. 난 내가 위대한 사람인줄 알았다(웃음). 그 후에 ‘금홍아 금홍아’ ‘축제’ 시나리오도 쓰게 됐고. 그런데 감독 데뷔는 여의치 않았다. 한 2년 정도를 사실상 실업자로 보냈다. 비로소 “난 천재가 아니었구나” 느꼈다. 그러던 중 미국 남가주대(USC) 대학원으로 유학을 가게 됐다.
 
-미국 생활이 힘들지는 않았나.
▲아시아 학생은 내가 최초였다. 프랑스 친구와 친하게 지냈다. 영어를 둘 다 비슷하게 못했으니까(웃음). 매일 20페이지씩 시나리오를 써야했다. 저녁 먹고 8시에 앉으면 다음날 아침 8시에 끝난다. 그리고 곧바로 학교에서 수업 받고. 가족과 함께 생활해야 하니 돈은 금방 떨어졌다. 풀장 청소도 하고, 서점에서 책 박스도 날랐다. 책 나르기 무지 힘들더라. 그러던 중 미국에서 ‘아이언 팜’으로 감독 데뷔를 했다. 한국과는 시스템도 다르고, 내가 미숙한 점도 많아 힘들었다. ‘달마야 서울 가자’는 한국에서의 첫 연출작이다. 또 다시 한국 시스템에 적응해야만 했다. 영화 감독은 창조적인 능력 외에 정치력이 필요하다. 투자자, 스태프, 영화사의 관계를 조율하는 능력. ‘달마야 서울 가자’ 때는 그 부분이 부족했다.
 
-영화 말고 관심이 있는 것이 있다면.
▲강에서 물고기 잡는 것에 요즘 관심이 간다. 낚시 말고 채로 잡는 것. 지난여름에 스태프들과 함께 했더니 즐겁더라. 매운탕도 끓여먹고. 기타 학원도 다니는데 요즘 바빠서 자주 못나간다. 중고등학교 때 대충 쳤던 기타를 체계적으로 배워볼까 하는 욕심에. 나이가 들어가니까 음악이라는 게 감수성을 유지하는데 정말 도움이 된다.
 
-80년대 학번인데 정치 풍자에 관심은 없나.
▲코미디가 발생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는 점 때문에 욕심은 있다. 하지만 대학 때 운동권은 아니었다. 운동권에게 열등감을 느끼면서 글을 쓰려는 못난이였다. 공부도 잘하지 못했다. 늘 뒤에서 투덜대면서 이야기나 만들고. 친구들은 그런다. “배울 만큼 배운 놈이 좀 멋있는 걸 하지 왜 코미디를 하느냐”고. 하지만 나는 보여주고 싶다. 코미디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를.
 
-차기작에 대한 계획은.
▲‘방가?방가!’가 대박 나면 큰 영화를 만드는 거고, 중박 나면 중간 정도의 영화를 찍는 거고, 망하면 영화 못하는 거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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