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꺾인 기세를 되살리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롯데의 2010년 가을도 마감됐다.
롯데가 3년 연속 준플레이오프의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또 한 번 가을을 쓸쓸하게 마감했다. 지난 5일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 최종 5차전에서 4-11로 대패하며 시리즈 전적 2승3패로 물러난 것이다. 5전3선승제로 치러진 포스트시즌 시리즈에서 역대 3번째로 2연승 이후 3연패로 무너진 팀이 되어버렸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거취도 이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재계약 여부를 떠나 그가 최초의 외국인 감독으로서 보낸 3년의 시간을 정리해야 할 시점이 됐다. 로이스터 3년 체제의 공과를 정리한다.
▲ 공(功)

2007년 롯데는 7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2001년 이후 7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것이다. 강병철 감독은 계약만료와 함께 조용히 물러났다. 롯데는 강 감독의 퇴진 이후 무려 42일 동안 사령탑 자리를 공석으로 비워뒀다. 장고 끝에 롯데가 꺼내든 카드는 최초의 외국인 사령탑이었고 그가 바로 로이스터였다. 2007년 11월26일 로이스터는 롯데의 제13대 사령탑으로 선임됐다. 로이스터 감독은 "7위를 하려고 온 것이 아니다"며 각오를 내비쳤다. 그의 말대로 '로이스터호' 롯데는 7위는 커녕 5위조차 하지 않았다. 로이스터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후 롯데에게 가을잔치는 더 이상 어색한 무대가 아니었다.
로이스터 감독은 롯데를 구단 사상 처음으로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다. 맹목적인 강훈련보다는 효과적인 자율훈련에 주력하면서 선수들의 마음을 샀다. 메이저리그 출신답게 선굵은 야구를 추구하며 선수들에게 '두려움 없는' 야구를 주문했다. 덕분에 롯데는 8개 구단 중 가장 공격적인 팀으로 변모했다. 초구부터 공격적으로 방망이를 휘둘렀고, 다음 한 베이스를 노리는 적극적인 주루플레이로 상대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김주찬·강민호·손아섭·전준우 등이 로이스터 감독 밑에서 비로소 야구에 눈을 떴다. 베테랑 선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장거리 타자로 대변신한 홍성흔을 탈바꿈시킨 것도 다름 아닌 로이스터 감독이었다.
야수 출신이지만 로이스터 감독은 투수들에게도 공격적인 피칭을 강조했다. 과감하게 몸쪽 승부를 펼치는 투수를 선호했고, 마운드에서 도망가는 투수를 나무랐다. 로이스터 감독이 강조한 것은 결국 자신감이었다. 몸쪽 승부 강조도 자신감있는 피칭을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투수와 야수 모두 '노 피어(No Fear)' 야구에 물들었다. 그 결과 롯데는 3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오를 수 있었고, 페넌트레이스에서도 시즌을 거듭할수록 더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롯데는 로이스터 체제로 지난 3년간 204승185패3무, 승률 5할2푼을 기록했다. 게다가 롯데 선수들은 누구보다도 야구를 재미있게 했다.

▲ 과(過)
데뷔 첫 해였던 2008년에만 하더라도 로이스터 감독은 '2군은 신경쓰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그해 발견한 조정훈을 시작으로 매해 수준급 2군 선수들을 발굴했다. 특히 올해 이재곤·김수완·전준우·김사율·문규현 등 2군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던 선수들이 무더기로 활약하며 무럭무럭 자라났다. 로이스터 감독은 당장의 팀 성적뿐만 아니라 팀의 미래가 될 젊은 선수들을 제 때 발굴하고 재발견했다는 점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이들은 감히 '로이스터의 아이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이스터가 남든, 떠나든 이들은 향후 롯데의 밝은 미래를 이끌 재목들이다.
그러나 끝내 로이스터 감독의 발목을 잡은 건 단기전, 즉 포스트시즌이었다. 2008년 삼성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3연패로 깨끗하게 물러났을 때만 하더라도 그러려니했다. 하지만 지난해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1차전 승리 후 3연패로 무너지자 의혹의 시선이 커졌다. 올해 먼저 2연승을 하고도 내리 3연패로 허망하게 패퇴하자 로이스터 감독의 단기전 승부에 대한 의혹은 물음표에서 느낌표가 돼가고 있다. '장기전은 잘하지만, 단기전에는 약하다'는 이미지가 고착화된 것이다. 1992년을 끝으로 정상에 오르지 못한 롯데는 이제 포스트시즌 진출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 팀이다. 그들의 목표는 한국시리즈 우승이다.
이번 준플레이오프에서도 로이스터 감독은 뚝심 아닌 뚝심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두산 김경문 감독이 뚝심을 버리고 적절한 변화를 가미하며 돌파구를 찾은 반면 로이스터 감독은 고정타순으로 이렇다 할 변화를 주지 않았고, 승부의 맥을 짚는데 약점을 드러냈다. 특히 5차전에서 송승준을 일찍 내리면서 라이언 사도스키 대신 이정훈을 올린 건 악수가 되고 말았다. 전반적으로 거시적인 시각에서 투수를 운용했는데 단기전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결과적으로는 이길 수 있는 카드를 모두 쓰지 못한 것도 아쉬움이다. 단기전에서 로이스터 감독은 분명 인상적이지 못했다.

▲ 재계약 여부는
로이스터 감독이 3년간 롯데에서 남긴 성과는 뚜렷하다. 그러나 롯데의 눈높이가 높아졌다는 것이 재계약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일단 선수들과 팬들은 로이스터 감독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선수들은 진심으로 그들을 안아준 로이스터 감독에 깊은 신뢰감을 갖고 있다. 한 선수는 "로이스터 감독이 떠난다면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팬들도 자발적인 모금 운동으로 로이스터 감독의 연임을 지지하는 신문 광고까지 냈다. 선수들에게 진심어린 모습을 보인 데다, 팬서비스에도 충실한 덕에 외국인 감독이라는 핸디캡에도 굉장한 환심을 샀다.
그러나 재계약 여부는 미지수다. 준플레이오프 탈락은 재계약에 대한 시각을 긍정에서 부정으로 기울었다. 로이스터 감독은 5차전 패배 후 "한국에서 이루고 싶은 것이 많다. 우승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3년간 이룬 것만 따져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만년하위팀에서 계속 좋은 성적을 냈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계약 여부에 대해서도 로이스터 감독은 "롯데 구단에게 달려있다. 지금까지 기다렸으니 구단에서 알아서 잘할 것"이라면서도 "팬·선수·코칭스태프의 후원을 많이 느꼈다. 당연히 다시 돌아오고 싶다"고 속내를 밝혔다.
과연 2011년 롯데 감독도 로이스터일까. 아직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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