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천국으로. 다시 지옥으로. 참으로 잔인한 가을이다.
두산 우완 정재훈(30)에게 2010년 가을은 참으로 고달픈 나날의 연속이다. 지옥의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기사회생했으나 또 다시 지옥으로 떠밀리고 있다. 영원한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는 것이 스포츠 세계라고 하지만, 정재훈에게는 유독 가혹하게만 느껴진다.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두산이 당한 3패 모두 정재훈이 허용한 결승 피홈런 3방 때문이었다. 당연히 두산의 3패는 모두 정재훈의 패이기도 하다.
정재훈은 올해 홀드왕이다. 63경기에서 78이닝을 소화해 8승4패2세이브23홀드 평균자책점 1.73을 기록했다. 50이닝 이상 던진 구원투수 중 평균자책점이 가장 낮은 투수가 바로 정재훈이다. 올해 두산 불펜이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건 이용찬과 고창성의 역할도 컸지만 정재훈의 이름을 빼놓고는 설명이 어렵다. 이용찬이 음주운전 파문으로 포스트시즌 엔트리에서 탈락하면서 정재훈이 마무리 역할을 맡은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정재훈은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부터 고전을 면치 못했다. 1차전에서 9회 전준우에게 결승 솔로 홈런을 맞았고, 2차전에서는 연장 10회 이대호에게 결승 스리런 홈런을 맞으며 무너졌다. 2경기 연속으로 결승포를 얻어맞아 심각한 내상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정재훈은 4차전에서 7회 2사 만루 위기에서 등판, 롯데 타선의 추격을 잠재우는 피칭으로 우뚝 일어섰다. 누구보다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스스로 이겨냈고 5차전에서 플레이오프행을 직접 확정지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첫 판부터 악몽이 재현됐다. 문제는 전가의 보도처럼 쓰던 포크볼이었다. 정재훈은 1차전에서 박한이에게 맞은 홈런을 포함해 3개의 안타를 모두 포크볼을 던지다 얻어맞았다. 특히 박한이에게 던진 124km 포크볼은 가운데 높게 몰려 장타를 맞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의 코스였다. 삼성 타자들은 작심이라도 한듯 정재훈의 포크볼을 기다리고 공략했다. 이날 정재훈의 직구 최고 구속은 140km밖에 되지 않았고 그것도 딱 한 번이었다. 구위가 떨어진 상태에서 포크볼에 의존했지만 그것마저도 잘 떨어지지 않았다.
두산 김경문 감독은 "정재훈이 연투를 하면서 공을 많이 던졌다"고 말했다. 준플레이오프부터 플레이오프까지 두산이 치른 6경기에서 5경기를 등판한 정재훈이다.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최고 143km를 찍었던 직구 구속이 크게 떨어진 게 이를 증명하고 있다. 또한, 상대 팀에서 포크볼을 철저히 대비하고 들어온다는 점도 정재훈을 괴롭히는 요소.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 4~5차전에서는 포크볼 비율을 크게 낮추며 재미를 봤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다시 포크볼에 의존하면서 얻어맞고 말았다. 장기인 포크볼에 대한 부담이 커진 것이다.
두산으로서는 정재훈이 오뚝이처럼 일어서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이용찬이 없는 상황에서 두산이 믿을 만한 최후의 보루는 결국 정재훈 뿐이다. 정재훈이 기력을 되찾아야 두산의 반격도 가능하다. 정재훈이 없었으면 두산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다. 잔인하게 흘러가고 있는 정재훈의 가을 드라마가 어떻게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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