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 히메네스-왈론드, 성품이 더 빛난 '外人'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0.10.09 10: 28

아무리 좋은 실력을 갖췄더라도 팀원으로서 분위기를 해치거나 개인 성적만 앞세운다면 좋은 외국인 선수라고 보기 어렵다. 그 점을 감안한다면 두산 베어스는 성품 좋은 외국인 투수를 뽑았다고 보기에 충분하다.
 
페넌트레이스에서 14승을 올린 도미니카 출신 우완 켈빈 히메네스(30)와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다가 좌완 릴리프로 보직 이동한 미국 출신 레스 왈론드(34)가 선수단의 일원으로서 확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비단 기록적인 면 만이 아니라 팀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씨로 팀의 승리에 공헌 중.

 
올 시즌 14승을 거두며 카도쿠라 겐(SK)과 함께 최고 외국인 투수로 우뚝 선 히메네스는 지난 8일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2차전서 7이닝 동안 110개의 공을 던지는 역투를 펼치며 5피안타(탈삼진 2개, 사사구 1개) 무실점 쾌투를 선보였다. 체력이 바닥난 지경에 이르렀던 계투진을 감안했을 때 히메네스가 7회까지 21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아낸 점은 분명 내실있는 쾌투였다.
 
특히 이날 경기는 비로 인해 개시 시간마저 17분 늦었던 데다 두 차례의 우천 중단으로 선발 투수가 제 위력을 과시하기 어려웠던 경기. 상대 선발 배영수도 좋은 경기 운영 능력을 보여주던 시점에서 히메네스가 자칫 흔들렸더라면 두산의 1승은 요원했다.
 
7회초 두산 공격 장면에서 불펜에 있던 히메네스는 통역인 이창규 운영팀 과장을 통해 트레이닝 상의를 가져다주길 부탁했다. 내리는 비로 인해 체감온도가 급감할 우려를 비춘 히메네스가 옷을 껴입고 몸을 덥히려 했던 것. 당시 김경문 감독은 "교체하고자 했으나 히메네스가 더 던지겠다고 하더라"라며 고마움을 표시했고 히메네스는 7회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페넌트레이스 도중에도 히메네스는 임태훈에게 싱커를 가르쳐주고 국내 투수진 맏형 김선우와 진지한 이야기, 농담도 섞는 등 이방인이 아닌 투수들의 형이자 동생으로서 보이지 않는 공헌을 했다. 이 과장은 "성격도 적응력도 만점이다. 오히려 한국 음식 적응력은 왈론드보다 더 나을 정도"라며 동료 히메네스를 높이 평가했다.
 
시즌 개막 전 팔꿈치 부상 재발 우려 및 왼팔뚝 통증 등으로 퇴출 위기에 오르기도 했던 왈론드의 모습도 주목할 만 하다. 7승을 거뒀으나 평균 자책점이 4.95에 달해 안정감이 떨어진 모습을 보였던 왈론드는 포스트시즌서 좌완 계투로 출장 중이다. 이재우의 부상 이탈, 음주운전 물의를 일으켜 잔여 시즌 출장이 불가능해진 이용찬의 공백을 막기 위해 김 감독이 꺼낸 고육책이었다.
 
그러나 왈론드는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 3경기에서 1승 무패 평균 자책점 1.17로 호투하며 팀의 리버스 스윕 주역 중 한 명이 되었다. 계투로 포스트시즌을 시작하는 데 대해 "보직이 무슨 상관 있겠는가. 페넌트레이스에서 기대에 못 미쳤으니 팀을 위해서 힘을 쏟는 것이 우선이다"라며 구성원으로서 책임감을 먼저 앞세운 왈론드였다. 주무기인 커브에 최근 구사도를 높인 투심의 움직임이 나쁘지 않은 것은 고무적.
 
여기에 왈론드는 팀에 '샤머니즘'의 힘까지 불어넣고 있다. 준플레이오프 첫 2경기 패배로 인해 플레이오프 진출 좌절 위기에 놓이자 왈론드는 3차전 시작을 앞두고 "Why Not"이라는 일종의 '부적'을 만들어 라커룸 쪽에 붙였다. 그리고 이 글이 붙은 후 두산은 롯데에 3연승을 거두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기선제압 당한 팀이 극적인 연승으로 상위 시리즈에 진출한 전례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두산 선수단 내에 알게 모르게 패배 의식이 배어나던 순간. 왈론드는 "안 되기는 뭐가 안 되는가"라는 질문을 선수단 내에 던졌다. 8일 2차전을 앞두고도 왈론드는 "내가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겠다. 잘 지켜봐라"라는 이야기를 전한 뒤 똑같은 문구를 원정 덕아웃 벽에 붙였고 팀은 4-3 신승으로 기사회생했다. 
 
이날 경기서 왈론드는 ⅔이닝 1실점으로 아쉬움을 비췄으나 일단 리드를 내주지는 않았다. 7일 1차전에서는 ⅔이닝 무실점으로 리드를 견인한 투수 중 한 명이 되기도 했다. 팀 승리를 위해 왈론드는 나름의 부적을 손수 제작하는 마음씨를 보여줬고 경기력으로도 공헌 중이다. 경기에 기록되는 이닝 수는 짧지만 그 순간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불펜에서 던지는 보직이 바로 계투 자리기 때문에 왈론드의 공헌도는 기록 그 이상으로 볼 수 있다.
 
두 투수를 다음 시즌에도 두산에서 함께 볼 수 있을 지 여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 그러나 팀 구성원으로서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두 투수들의 마음 씀씀이는 분명 지나칠 수 없던 대목이다.
 
farinelli@osen.co.kr
 
<사진> 히메네스-왈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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